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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잠실 중립 경기, 서울공화국의 자화상
위클리이닝 | 2011-11-04 21:34
이 주제의 글은 매년 나오는 것 같다. 그러나 식상한 주제지만 쓰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잠실 중립 경기 문제다. 2011시즌 포스트시즌 일정이 발표되었는데, 예년처럼 잠실 중립 경기가 5,6,7차전에 편성되었다. 그나마 올 해는 LG와 두산 모두 PO에서 탈락하면서 2010년처럼 두 가지 일정을 발표하는 사례가 없었다는 점이 다르다. 매년 반복되는, 그래서 어쩌면 한국 프로야구의 전통이 된 이런 잠실 중립 경기의 근거는 프로야구 규정 상 25,000석 이상의 관중석을 가지지 못한 구단이 한국시리즈에 올라갔을 경우, 잠실에서 경기를 치르도록 한 규정 때문이다.

이 규정을 두고 입장 수입 극대화 측면에서 옹호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입장 수입은 잠실에서 치룰 경우 더 크다. 관중석의 규모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재정적인 측면에서 더 이익이 된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왜 PO나 준PO에서는 잠실 중립 경기를 치루지 않을까? 과거에는 실제로 PO나 준PO에서도 잠실 중립 경기를 가졌다. 이 규정이 사라진 것을 볼 때, 결국 한국시리즈 수입은 잠실 중립 경기의 한 요인은 되겠지만, 주된 요인은 아니다.

궁극적인 이유는 행정편의적인 측면이다. KBO 및 각 구단의 핵심 수뇌부들이 위치한 곳이 대부분 수도권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수도권 경기가 아닌 지방으로 간다면, KBO 총재야 직접 가겠지만, 각 구단의 수뇌부가 이동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단적으로 2008년 한국시리즈에서 최태원 회장은 헹가래를 받았고,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후자는 대구구장에서 경기가 끝났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다. 그룹 경영의 총책임자라는 위상을 감안할 때, 아무래도 야구를 위해 지방까지 이동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상당수 대기업의 본사가 서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시구를 맡았던 배우 박민영 (사진=SK)

프로야구는 다른 종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역과의 연계성이 괜찮다고는 하지만, 역시 구단 운영에서 모기업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것은 분명하다. 모기업이 가장 두드러질 수 있는 자리는 현 시점에서는 가장 상징성 있는 서울의 구장이다. 그렇기에 잠실 중립 경기 폐지에 대해서 딱히 별 말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상징성 있는 자리에서 가장 높은 곳에 다른 기업을 누르고 올라갔다는 그 상징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잠실이라는 자리는 일종의 보험으로 꼭 필요하다. 결국 프로야구가 가진 근원적인 고민, 어떻게 자생적인 운영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잠실 중립 경기 속에도 들어간 것이다.

이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잠실 중립 경기가 없어져야 하는 중대한 이유가 있다. 하나는 매년 응원하는 해당 연고지 팬들에게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큰 선물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승 축승회 역시 서울에서 끝나면, 서울 근교 호텔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고, 해당 연고지 팬들에게는 같이 어울리고 축하할 기회가 드물다. 2002년 삼성의 우승과 2009년 KIA의 우승 중에서 더 감동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전자를 꼽는데 이유는 삼성은 대구에서 우승을 확정지으면서 분위기가 더 살아났기 때문이었다.

다른 하나는 서울 팀의 정체성 문제다. 국토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모든 팀들이 전국구 팀을 지향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서울 팀은 서울의 정체성을 가지고 팬들을 흡수할 때, 비로소 프로야구의 기반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매번 서울은 서로 다른 두 팀의 홈과 원정이 되면서 서울 특유의 문화나 기반을 정립하지 못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항상 나오는 논쟁이 서울 팀은 누가 먹여 살리는가와 서울 구장에서의 응원 문제다. 이는 결국 서울 팀의 이미지를 희석시킨다. 즉, 그들의 노고가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원정 팀에 의존한다거나 혹은 서울 팀은 항상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는 궤변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귀성객들이 존재하는 한, 잠실 중립 경기는 흥행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사진=SK)

그렇지만 잠실 중립 경기는 매번 흥행에 성공했다. 잠실 중립 경기가 흥행에 성공하지 않았다면, 이는 입장 수입을 위해서라도 이미 역사 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결국 이 문제의 근원은 수도권에 모든 것이 집중된 한국의 역사다.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스스로를 서울 시민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자신의 뿌리에 기반을 둔 팀을 응원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삼성, KIA, 롯데, 한화 같은 팀들은 연고지 외에도 수도권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런 기반이 있기 때문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서울에서 지방 팀들을 붙인다는 발상이 나온 것이다.

불행히도 세월은 흘렀지만 일자리를 위해 서울로 올라오는 시대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이제는 대학까지 소위 IN 서울이라 부르면서 서울로 올라오는 시대가 열렸다. 그렇게 1세대의 팬들도 서울로 올라왔고, 2세대의 팬들도 서울로 올라왔다. (프로야구가 어느덧 30년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시라.) 프로야구 입장에서는 여전히 서울은 서울 팀의 연고지가 아니라 모든 팬들이 집결하는 하나의 장소다. 그렇기 때문에 구단 고위층의 참석 유도라는 행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흥행에 대한 예측에 있어서도 유리한 장소다. 결국 잠실 중립 경기는 당위만으로 폐지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흥행과 관심을 모두 끌 수 있는 장소라는 점은 큰 이점이며, KBO는 흥행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다.

25,000석의 야구장이 모두 갖춰진 뒤에는 잠실 중립 경기가 일시적으로 사라질지 모른다. 그나마 이런 당위를 강제하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잠실 중립 경기를 폐지할 근거가 있다. 하지만, 근거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과거에 30,000석 야구장이 잠실구장의 관중석 축소로 인해 충족될 수 없자 25,000석으로 바뀐 것처럼, 얼마든지 다른 조항을 걸 수 있다. 문제는 야구장의 시설이 아니라, 서울에 모든 것이 집중된 한국의 현실 그 자체다. 잠실 중립 경기는 이를 반영하는 하나의 현상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한국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현상이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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