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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장효조 감독님, 저도 사랑합니다.
위클리이닝 | 2011-10-06 10:59
1989년 8월 17일 잠실 야구장, 어린 꼬마였던 제가 야구장을 처음 찾았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투수는 넥센 김시진 감독. 큰 키에, 낙차 큰 변화구를 던졌던 그 투수, 관중석에서 어른들은 “롯데 김시진이 나왔으니 오늘 OB는 힘들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건네셨습니다.

그 때는 몰랐습니다. 김시진과 장효조, 이 두 명의 선수가 롯데에서 삼성으로 트레이드 되었던 선수였는지도 몰랐습니다. 롯데의 김시진과 장효조, 혹자들은 첫 사랑이라는 말로 야구를 표현한다면, 제게는 이 두 명의 선수는 각별했던 인연이었습니다. 익숙했던 사랑, 혹은 낯익었던 우정(?)이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렇습니다.

여담입니다만 누군가를 좋아해서, 누군가를 흠모해서, 그리고 누군가를 응원하고 싶어하는 야구는 첫 사랑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팬들에게 그래서 스타의 은퇴식이란, 또 다른 방식의 이별이자 사랑하지만 보내줄 수 밖에 없는 감정을 비슷하게 투영시키는 행사(?)라는 생각도 드네요.

윤동균 선수 은퇴식 날, OB 투수는 최일언 전 SK 투수 코치, 라인업에는 김광수 감독 대행이 2번에, 신경식-김형석-최동창으로 이어지는 공포의 타선이 4번 타자 윤동균을 떠받쳤습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그 날의 포수는 NC 소프트 김경문 감독님으로 기억합니다.

상대팀 롯데에는 진하게 장효조라는 이름 석자가 걸려있었습니다. 4번 타자 김민호 앞에 1번 타자 최계영 뒤에, 장효조라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제대로 깎지 않은 투박한 수염, 구릿빛 피부, 어릴 때는 몰랐던 마초적인 매력, 그 때는 왜 장효조를 연호하는지 몰랐습니다.

정말 베트를 짧게 잡고 휘둘렀습니다. 대기 타석에서 상대를 빤히 바라보며, 베트를 세우고 기다렸습니다. 이미 상대에 대한 준비가 이미 끝났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날은 베트에 그 흔한 스프레이도 뿌리지 않고, 장갑만 대충 고쳐서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최동원 감독을 선수 시절, 무척이나 좋아하셨던 아버지가 그러셨습니다. “최동원도 최고지만, 타자는 정말 장효조야. 정말 장효조로 시작해서 장효조로 끝나거든.” 그런데 사실 허규옥, 한문연, 김민호, 김응국 같은 타자들에게 어린 꼬마는 눈길이 더 쏠렸습니다. 이유는,

막 눈인 꼬마의 첫 눈에 장효조라는 선수는 정말 투박해보였거든요. 키도 작고, 뭐랄까. 그냥 야구를 썩 잘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논리치고 참 빈약합니다. 제가 야구장 갈 때마다 잘하지 않았기 때문도 그 많은 이유 중 하나일 듯 합니다.

선수 김성한과 유승안처럼 홈런을 더 많이 쳐주길 바랬습니다. 그런데, 선수 장효조는 열심히 뛰고, 열심히 치고, 열심히 걸어나가는 모습만 보였습니다. 그 열심히가 그 때는 얼마만큼의 가치를 몰랐던 시절입니다.

야구를 먼저 보기 시작했던 동네 형들이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롯데 야구를 보면서 장효조를 응원하지 않던 녀석은 네가 처음이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다른 선수도 아닌, 정말 장효조였으니까요.

주자가 없을 때 짧게 끊어치는 모습, 찬스라면 수비 빈 공간을 활용하는 능력,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공을 기다리던 당신. 박종호와 장원진이 최고의 2번 타자라는 말을 정착시켰다면 지금 제 기억의 장효조는 ‘진짜 교타자’라는 말이 어울리던 선수였습니다.

사실 윤동균 선수 은퇴식 날, 장효조 선수는 2번 타석에 들어서서, 제 기대치에 영락없이 걸맞는 활약을 보여주셨습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안타는 커녕, 악마 같은 출루율도 보여주지 못했거든요. 그리고 최고의 타자 장효조가 대타 이종운(현 경남고 감독)으로 바뀌는 것도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첫 만남은 그래서 별로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옆에서 계시던 이모들은 “장효조는 안타치지 못하면 걸어라도 나가는데, 오늘은 무슨 일이지.”라며 근심 섞인 표정을 지어보이셨습니다. 장효조, 장효조 그랬을 때 엄청 잘한다고 듣고 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야구장에 처음 갔던 그 날, 선수 장효조는 단 한 개의 안타도 쳐내지 못했습니다. 상대팀 김형석 선수가 홈런을 쳐내며 오히려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게임이 끝나고 윤동균 선수 은퇴식이 거행될 무렵, 롯데 대표로 장효조 선수가 꽃다발을 윤동균에게 가져다 줍니다. “안타라도 하나 치지” 시무룩했던 꼬마는 다시 한 번 투덜댑니다. 저와 장효조 선수와의 첫 인연은 그렇게 관중석과 그라운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1992년 다시 만나게 됩니다. 두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더불어 진짜 우리의 이야기는 그 때 시작됩니다.

시즌 초,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그는 고사리 손 같은 제 손을 잡았습니다. “꼬마야, 이름을 얘기해야지.” 사실 저는 그 때, 장효조 선수 앞에서 시무룩하게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다들 쳐다봤습니다. “아저씨, 왜 안타 못 치셨어요.”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저도 감정 표현이 서툴렀습니다.

“누구 좋아하니?” 구릿빛 피부의 남자는 이제 세월과 한계라는 흐름 앞에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왜 제가 야구장 갈 때마다 홈런 왜 안 치세요? 최동원, 서호진 선수와도 친하세요?” 롯데 모자를 썼던 꼬마, 어린이 회원 점퍼를 입고 있던 저는 대뜸 구릿빛 남자에게 대뜸,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대타자에게 어린 꼬마가 책망하는 모습은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잘한다는 박동희 싸인볼과 글러브를 쥐고 있던 아이, 이모부 소개로 우연히 만났던 자리. 사람들이 장효조, 장효조 하는 이유를 그 때는 조금 알아갈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투정을 부렸습니다. 투박해 보이는 사내가 날 설마 꾸짖을까라는 영악한 심리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3안타, 4안타 장효조라는 기사를 꽤 많이 봤었습니다. 다만, 그 안타가 점수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고, 어린 막눈에 안타보다 홈런이 더 값어치 있고, 잘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듭니다.

“아저씨와 약속 하나 하자.” 사람이 없고, 한적할 때라 선수 장효조는 허리를 숙여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아저씨를 야구장에서 보면 말이다.” 뭐랄까, 이런 살가운 이야기는 네가 처음이야라는 말투로 연거푸 말을 이어갔습니다. “나갈 때마다 아저씨한테 박수 한 번씩 쳐주기다. 많이 못 나온다고 투덜대지말고” 그냥 웃었습니다.

그 때는 웃음밖에 따로 표현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뭐라고 해야하나요. 누군가에게 고백을 하는데, 너무나도 어색하고 처음 해본 고백이라서 쑥쓰러운 말투가 섞인 그런 말투 말입니다. 시라노 연애 조작단 송새벽씨의 바로 그 말투 있잖아요.

“꼭 박수 몇 번 쳤는지 알려줘야 한다.” 올백 머리를 살짝 매만진 그는 제 어깨를 살짝 잡았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건넸습니다. “TV에서 언젠가 중계가 있던 날, 2루타를 치면 손가락 2개를 들어올리마. 박수 두 번이야.”

이모부는 한참을 웃으셨습니다. 다른 선수도 아닌, 자존심 강한 장효조가 정말 꼬마를 위해서 최대한의 배려를 해준 것이라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친구들이 야구장에 가서 싸인을 해달라고 해도, 잘 안해준다고 소문났던 그, 참 살갑지 않았다던 장효조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를 제게 건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2년,

롯데는 우승을 했습니다. 강병철 감독은 그 당시 위기 순간에 지명타자 장효조, 대타 장효조를 타석에 들여보냈습니다. 선수 장효조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실망이라는 것을 그 때 많이 알았습니다. 어김없이 안타를 뽑아냈습니다. 저는 무심코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임무가 끝나면 묵묵히 올백 머리를 만지며 덕아웃으로 들어갔습니다.

2번 대타로 나올 때 안타를 치면 2번, 6번 지명타자로 나올 때 안타를 치면 정확히 6번을 쳤습니다. 저도 약속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바보같이 성실하기만 했던 그가 TV에 잡혔습니다. 수줍은 듯, 손가락 두 개를 들어올렸습니다. ‘박수 두 번’

장효조의 안타에 유격수 박계원, 김민재, 공필성까지 모두 하이파이브를 하며 덕아웃으로 들어갔습니다. 장효조 아저씨는 환호에 2루에서 씩 웃으며, 그렇게 손만 잠깐 들었다 내렸습니다. 저를 보라고 한 것인지, 아니면 무심코 한 행동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믿고 싶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제스츄어, 제가 본 가장 화려한 제스츄어를 그렇게 보게 되었습니다. 박수로 처음 그의 야구에 화답했던 저, 그러나 아쉽게도 그를 선수로, 그라운드에서 본 마지막 모습이 그 때가 되었습니다. 92년 한국시리즈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승을 했을 무렵, 사인회에서 다시 한 번 그를 만났습니다. 소문이 돌았습니다. 장효조는 싸인하러 북적이는 곳에 오지 않는다, 조금 더 큰 자리에서 인사하기를 바란다, 많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런 이야기가 와닿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만났을 때, 제게는 그렇지 않으셨거든요.

“꼬마, 요새도 야구보느라 공부 안 한다며. 아저씨 보면서 박수 몇 번 쳤니.” 투박한 말투는 여전했지만, 누군지 알 수 있었습니다. “요즘도 라디오로 야구 듣나.” 롯데 점퍼를 입은 저를 뒤에서 낮은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굳은 살 박힌 손으로 제 어깨를 잡았습니다. 그 때보다 조금 더 조심스럽게 싸인을 해주었습니다. “(웃음) 박수 소리 야구장에서 안 들리더라.” 예전보다, 익숙한 목소리, 두 번째 고백은 조금 그럴싸한 고백, 세련된 고백처럼 들렸습니다.

그에게 받은 마지막 싸인이 당시에는 그렇게 대단한 줄 몰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는 익숙한 사랑에 제대로 화답하지 않았던, 말 그대로 그저 철 없는 꼬마였습니다. 친구들은 그 싸인을 코팅하라고 했었는데, 롯데 자이언츠 가방에 슬그머니 넣어 보관했습니다. 그 때 정말 아저씨에게 지금도, 마음이 걸립니다. 이전에도, 그 날도 고마웠다는 이야기, 제대로 해보지 못했거든요.

비오는 날, 바바리 코트에 우산 없이 비를 맞을 것 같은 남자, 2루타를 누구보다 손 쉽게 쳐내던 남자. 어린 꼬마에게 허리 숙이는 것이 익숙치 못해, 돌아서면서 머리를 긁적이던 사내. “추석 끝나고 오던가. 그 때는 한 번 보게.” 아저씨와의 최근 통화는 그랬습니다. 반가움에 벅찬 목소리보다는 뭐랄까, 투박하고 감정 표현에 서투른 그 모습 그대로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올 해 4월, 이모부를 통해 연락을 드렸습니다. 프로야구 30주년 행사 사진을 찍은 아저씨 사진도 우연히 봤습니다. 아저씨를 보고 싶은데, 저 세상으로 떠난 장효조 감독님을 두고, 당시 자리를 주선해주셨던 이모부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아마, 그 자존심 강한 장효조에게 가장 비싸게 굴었던 녀석이 너일꺼야. 지금 네가 이렇게 자란 것 보면 그 장효조 감독이 신기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편히 가셨을게다. 그리고 널 어디에선가 기억하실거야. 투박한 고백이 참 어색했던, 참 비싼 꼬마였던 녀석으로 기억하실지도 모르지.”

지금 카페에 앉아서 이 글을 마치고 있습니다. 무언가 그의 타구처럼 매끄럽게, 혹은 투박하게 끝내고 싶은데 쉽지가 않네요. 감독님, 혹은 아저씨라고 불렀던 남자, 끝으로 작은 고백을 남기며 조악한 글을 마치려 합니다. 조악하지만, 제가 아저씨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이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PS. 한 때 아저씨라고 불렀던 장효조 감독님, 가을 바람이 차네요. 윤동균 감독님 은퇴식 때, 안타 못 쳐서 속상했다는 것, 미안하셨다면서요. 미안하다, 잘못했다는 말씀 안 하시던 분이 그런 이야기를 어린 제게 하셨다면서요.

왜 제게 허락도 없이 먼저 가셨냐고 투정부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속상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제가 먼저 말씀드릴께요. 저 지금도 계속 박수를 치고 있다고 말이죠.

아저씨가 떠난 그라운드, 제 박수 소리 듣고 계신가요. 연락 자주 못 드렸어서 죄송해요. 공부 끝내고, 이제 서야 뵐 수 있게 되었는데,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보고 싶어요. 아저씨.

바보같이 익숙했던 감정, 정말 잊지 않을께요. 그러니까, 더 이상 아프지 말고 건강하셔야 해요. 투박했던 꼬마의 처음이자, 마지막 안타를 쳐달라는 바람입니다. 들어주실꺼죠?

[inning ID - 그대의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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