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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 프로야구(6) --- OB베어스(하)
최형석 | 2010-06-24 15:57

84년의 OB는 김성근감독의 팀답게 지금까지처럼 분명하게 포지션별 주전선수를 설명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주전 1루수 신경식의 방위입대와 3루수 양세종 허리부상으로 전체 포지션이 흔들리면서 그간 어느 구단에서도 거의 보기힘든 주전선수들의 멀티포지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OB는 2루수인 김광수와 우익수 윤동균외에는 거의 붙박이 주전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2년간 나름 주전으로 나서던 포수 김경문이 전기리그 중반에 선수생명을 걸 정도의 큰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으면서 박철순의 옆자리에 눕게 되자 자연스럽게 조범현이 OB의 안방을 차지했고 해태에서 이적해온 조종규가 백업 역할을 하게 됩니다.

 

조범현은 충암고시절부터 김성근감독의 수제자로 불리던 선수였지만 김경문이 건재하던 시즌초반에는 분명 김경문이 주전포수였고 이듬해 재활을 마치고 합류한 이후에도 근소하게 김경문의 출전기회가 더 많았던 것을 보면 김성근감독이 개인적인 인연이나 친분으로 경기를 출전시켰다고는 할 수 없었을 겁니다.

 

OB의 1루자리에는 큰 비상이 걸렸습니다.

신경식이 1년간의 방위입대로 자리를 비운 것인데 OB는 과거 국가대표 포수출신으로 은퇴한지 3년여만에 선수로 복귀한 박해종과 재일교포 홍신차로 그 자리를 메우려했지만 두 선수 모두 공수에 문제점을 보이면서 외야수인 박종훈이 대학시절의 포지션을 기억하면서 1루로 기용됩니다.

 

그러다가 전기리그가 끝날 무렵 방위병이 근무지역에 한해서 생업에 종사할 수 있다는 국방부의 회신을 받고 대전홈구장에 신경식을 출전시킬 수 있게 됩니다.

 

이 신경식의 방위병 경기출전 선례는 대단히 의미있는 것으로 이후 프로야구선수들은 출퇴근이 가능한 방위로 입대한 후에 복무중에 홈구장 경기에 출전이 자유로워지게 됩니다.

 

이러한 풍경은 90년대 중반까지 계속되었는데 초창기 퇴근후에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경기에 투입되던 모습에서 점차 소속부대, 아마도 구단에서 부대쪽에 여러가지 지원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러한 부대측의 양해아래 근무시간 조정, 그리고 휴가라는 명목으로 원정경기까지 출장하는 편법이 일반화되면서 군복무중임에도 일반 선수들과 별 다름없이 출전하게 되자 이것이 큰 문제가 되어 95년 이른바 방위병파동이 일어나 전면적으로 출전이 금지되게 됩니다.

 

OB에서 유일하게 전경기에 출장한 2루수 김광수는 입단후 최고의 해를 맞게 되는데 특히 도루숫자가 비약적으로 늘어나면서 드디어 공수 정상권의 2루수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지명권을 갖고도 김광수에 대한 신뢰로 입단을 거절한 정구선이 삼미에서 국내 최고의 2루수로 군림하던 것을 보면서 냉가슴을 앓았던 OB로선 김광수의 성장이 무엇보다도 반가운 일이었을 겁니다.

 

3루수 양세종마저 허리부상에 시달리면서 전기리그 중반부터 지명타자로 자리를 잡게 되자 붙박이 지명타자 김우열이 좌익수 수비로, 백업 내야수 구천서가 3루주전으로 가는 대이동이 벌어집니다.

양세종은 시즌중 입원까지 하게 되지만 수술이 필요없다는 판정에 다시 합류했고 오히려 수비부담이 없어지면서 3할타율에 47타점, 각각 7위와 8위에 오르는 맹활약을 하면서 조금 논란이 있긴 했지만 지명타자 골든글러브의 주인공이 됩니다. (절반정도는 특정수비에 나서고 절반은 지명으로 출전한 선수가 지명타자 자격이 있냐는 논란이었습니다.)

하지만 양세종은 이 시즌이 끝나고 현역입대를 하면서 선수생활에 날개가 꺽이게 되죠.

 

사실 전년도 신인으로 들어온 한대화가 3루수로 나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되던 상황인데 한대화는 입단후 유격수 자리에 집착하면서 유지훤을 밀어내지만 타율도 2할초반에 머물고 수비에 문제를 보이면서 주전을 꿰찾다고 하긴 어려웠습니다.

 

김우열, 윤동균이 두 노장이 코너외야를 맡는 가운데 중견수 박종훈이 1루를 병행해야 했고 그 자리를 신인인 김광림이 비집고 들어가면서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OB는 전기리그 초반 9연승을 올리면서 삼성의 독주가 예상되던 시즌에 돌풍을 일으키며 중반까지 치열한 선두다툼을 하게 되는데 종반에 불의의 6연패를 당하면서 전기리그를 내주게 됩니다.

후기리그에서도 끝까지 선두권을 맴돌았지만 결국 최동원을 거의 매일 내놓는 롯데의 기세를 당하지 못하고 1경기차로 우승을 내주게 되죠.

 

비록 한국시리즈에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전후기 종합승율 1위팀으로 에이스와 주전포수가 가동되지 못했음에도 폭넓은 선수층과 감독의 기막힌 용병술로 기대이상 선전했던 시즌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 해의 OB의 또하나의 성과는 박용민단장의 앞서가는 구단운영으로 6개구단 최초로 2군을 정식으로 운영한 것인데 다른 팀처럼 자리마련을 위한 2군코치가 아니라 이충순, 윤몽룡, 이삼열 등 세명이나 2군 코칭스텝을 구성하고 공개적인 선수모집, 이천에 전용구장까지 건립하는 쉽지않은 선진경영을 보여주었습니다.

 


레논 10-06-24 16:10
답변 삭제  
현역 다른 팀 감독이 네 분이나 나오는군요. @_@
총을 든 원숭이 10-06-24 16:17
답변 삭제  
잘 봤습니다.
방위 파동이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였군요.
기수 10-11-21 15:21
답변 삭제  
잘 읽었습니다. 제가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대의 야구이야기를 알게되니 새로운 세계를 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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