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스페셜 > 오감도 > 최형석의 옛날야구이야기

 
84년 프로야구(4) --- 삼성라이온즈(하)
최형석 | 2010-06-19 12:23

첫해는 장명부, 2년차에는 최동원의 성적에 가리긴 했지만 입단 2년간 17승, 19승을 올린 김시진의 성과를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김일융이라는 초거물 투수가 영입되었음에도 굳이 한명만 꼽자면 삼성의 에이스는 김시진이었고 특히 황규봉, 이선희, 권영호라는 원년트리오가 일시적인지는 몰라도 노쇠기미가 보이는 가운데 김시진이 없는 삼성은 우승은 내다볼 수도 없는 팀이었습니다.

 

이해의 한국시리즈에서 김시진이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면서 3승을 올린 김일융과 비교되지만 김시진은 계속해서 최동원과 매치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김일융과 순번을 바꿔서 나왔다면 김시진, 김일융의 승리숫자는 바뀌어 있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않아도 극진하게 모셔온 김일융이라는 존재로 인해 에이스 김시진의 심기가 불편한 상황에서 하필이면 김시진의 호투로 승리가 거의 굳어진후 김일융을 시험삼아 구원으로 데뷔시켰다가 동점 쓰리런홈런을 맞고 김시진의 승리를 가로챈 경기로 인해 두 에이스는 함께 있던 내내 그리 원만한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두 투수가 절정의 기량을 보인 이듬해에 똑같이 25승씩 올리면서 공동다승왕에 오른 것도 자존심 강한 둘의 신경전을 알고 있던 코칭스텝이 승수를 조절한 결과였습니다.

 

삼성은 권영호와 이선희가 여전히 부진한 가운데 원년 트리오중 한명인 황규봉이 10승을 올리면서 재기한 것이 큰 힘이 되는데 황규봉의 파란만장한 재기스토리는 다음의 글로 대체하겠습니다.

 

원조불사조 황규봉 --- http://blog.naver.com/pcrang01/140044522807

 

삼성은 김일융을 귀하게 영입하면서 혹시라도 있을 경기중 의사소통, 그리고 한국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일본에서 재일교포 포수까지 함께 입단시키는 세심한 배려를 합니다.

그가 바로 송일수라는 노장 포수였습니다.

 

수비전문포수였던 송일수의 합류로 전경기를 포수로 나가야 할 필요가 없던 이만수의 공격력이 더욱 배가되면서 시즌초반부터 타격 전부문에서 독주하게 되고 결국 시즌이 끝나도록 순위를 지키면서 타율, 홈런, 타점 3관왕에 오르는 이만수의 시즌이 됩니다.

 

후기리그 막판 타율관리를 위해 10여경기를 쉬면서 불명예스러운 3관왕이 되기는 하지만 오히려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많은 경기를 쉬면서도 홈런과 타점에서는 추격을 염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여유있게 독주했다는 점입니다.

 

레귤러가 정해지면 그렇게 많은 선수층을 가동하지는 않는 김영덕 감독의 스타일상 삼성의 그밖에 포지션은 전년에 비해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엔트리 상의 그렇게 많은 투수가 있었음에도 이해 삼성에서 승리를 기록한 투수는 단 2승씩이었던 이선희, 양일환을 포함해서 6명뿐이었습니다.

 

2할대 후반이었던 1루수 함학수와 3루수 김근석, 유격수 오대석의 위치는 거의 붙박이였고 주전 배대웅이 부상으로 후기리그부터 나오는 바람에 2루에서만 천보성과 정진호에게 기회가 갔을 뿐입니다.

 

외야에서도 이만수에게 타격왕을 내주고 타격4위(0.324)라는 부진한 해였지만 3번타순을 굳건히 지킨 장효조가 우익수로, 1번타자 장태수가 중견수로 고정된 가운데 나머지 외야의 한자리에서 신인 홍승규가 허규옥과 정현발을 밀어내고 주전으로 도약한 것이 삼성라인업의 가장 큰 변화였으며 그간 들쑥날쑥하던 지명타자 자리에 박승호가 급성장하면서 이만수, 장효조와 함께 나머지 중심타선의 한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게 됩니다.

 

전기리그를 우승하고 후기를 포기하는 바람에 종합승율에서 1위팀이 아니었고 한국시리즈 패배로 이 해의 챔피언의 자리에도 올라가지 못했지만 84년시즌에서 누가뭐래도 객관적인 최강의 전력은 삼성이었습니다.

 

전기우승팀이 후기리그에서 파트너를 고른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겪고난 삼성은 이듬해 전후기를 싹쓸이 우승하면서 포스트시즌을 무산시켰고 전후기제도의 폐해를 그대로 보여주면서 시즌제도에 손을 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게 됩니다.

 

 


높새바람 10-06-19 19:25
답변 삭제  
0.324가 부진한거면.. 장효조 선수는 도대체 어느 정도는 해야 잘한다는 소리를 든는 건가요?;;;
레논 10-06-19 19:57
답변 삭제  
4할은 해야... ^^ 실제로 장효조 선수는 MVP같은 상 별로 받아본 일이 없다고 하더군요. 타율 1위는 해봤자 당연한 걸로 취급하고.
 
 

Total 62
84년 프로야구(6) --- OB베어스(하) (3)
최형석 | 2010-06-24 15:57:06
84년의 OB는 김성근감독의 팀답게 지금까지처럼 분명하게 포지션별 주전선수를 설명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주전 1루수 신경식의 방위입대와 3루수 양세종 허리부상으로 전체 포지션이 흔들리면서 그간 어느 구단에서도 …
84년 프로야구(5) --- OB베어스(상) (1)
최형석 | 2010-06-22 22:03:00
3) OB베어스   김성근호의 출범. 김영덕감독이 삼성으로 팀을 옮기면서 김성근이 2대감독에 취임했고 전임감독과는 완전히 다른 팀컬러를 만들면서 OB를 전혀 새로운 팀으로 변모시킵니다.   OB는 84년도 종합성적 1위였지만 …
84년 프로야구(4) --- 삼성라이온즈(하) (2)
최형석 | 2010-06-19 12:23:35
첫해는 장명부, 2년차에는 최동원의 성적에 가리긴 했지만 입단 2년간 17승, 19승을 올린 김시진의 성과를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김일융이라는 초거물 투수가 영입되었음에도 굳이 한명만 꼽자면 삼성의 에이스는 김시진이었고 특히 황규봉, …
84년 프로야구(3) --- 삼성라이온즈(상)
최형석 | 2010-06-19 12:23:05
2) 삼성라이온즈   83년 최상의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지휘권의 대혼란으로 충격의 하위권으로 떨어졌던 삼성. 선수단만큼이나 지도력 보강에 힘을 쏟은 결과 한국의 드림팀 코칭스텝이 탄생합니다.   84년의 삼성 선수단입니다…
84년 프로야구(2) --- 롯데자이언츠(하) (6)
최형석 | 2010-06-10 12:13:44
투수코치는 커녕 투수를 경험한 단한명의 지도자도 없었던 팀에서 투수력으로 후기리그를 우승하고 결국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롯데. 이것이 바로 에이스중의 에이스, 최동원의 힘이었습니다.   81년 실업야구에서 맹활약하며 아…
84년 프로야구(1) --- 롯데자이언츠(상) (7)
최형석 | 2010-06-07 02:34:33
프로야구 3년째. 83년과 마찬가지로 전후기 50경기씩, 총 100경기 시즌으로 펼쳐진 84년시즌은 전후기제도의 가장 나쁜 폐단을 보여주면서 결과적으로 제도변경을 불러일으킨 시즌입니다.   83년, 2개팀에 공급된 재일교포들의 수준높…
83년 한국시리즈 <해태 : MBC> (4)
최형석 | 2010-06-01 08:32:01
일찌감치 후기리그를 포기했던 해태, 그리고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장명부의 삼미가 자중지란에 빠지면서 결국 김동엽 체제로 새롭게 팀을 정비한 MBC의 우승으로 후기리그는 끝이 납니다.   이제 전기우승팀 해태타이거즈와 후기우승팀 MBC…
이상했던 MVP, 신인왕 선정 (4)
최형석 | 2010-05-31 11:18:37
MVP와 신인상의 선정은 83년 한국시리즈 3차전중, 그러니까 시점상으로 한국시리즈가 먼저 일어난 일이기는 하지만 한국시리즈를 끝으로 83년편을 마감할 예정이므로 먼저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 해에 최우수선수와 신인상의 유력후보자들…
한국프로야구 드래프트史 --- 1983년 (3)
최형석 | 2010-05-30 15:12:33
드래프트 명단 ---  http://blog.naver.com/pcrang01/140016263875    83년이라면 프로야구 2년째 들어서는 해입니다. 사실 82~85년까지 연고지내에 원하는 모든 선수를 무제한으로 뽑을 수 있었던 시절이니만큼 이 기간의 …
백인천, 박철순의 몰락 (3)
최형석 | 2010-05-30 15:11:11
82년편에서 가장 활약이 뛰어난 두 사람을 묶어서 글을 쓴적이 있습니다. 둘다 해외파로 국내에 복귀해 한수 위의 기량을 펼쳤고 박철순은 결국 투수부문 3관왕(다승, 방어율, 승율)을 차지하면서 MVP까지 획득, 백인천은 타격부문 3관왕에 버금가…
서정환, 정영기, 차동열... 열리기 시작한 트레이드 시장 (3)
최형석 | 2010-05-24 08:32:02
초창기 우리 프로야구는 철저하게 지역연고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도 각지역을 분할하는 연고지는 존재하지만 현재는 드래프트를 통해 타지역의 선수를 입단시키고 있는데 반해 당시 프로팀들은 연고지내 선수들을 입단시킬 수 있는 권리…
삼성 이충남 감독대행 - 특별한 의미의 \ 감독대행\ (3)
최형석 | 2010-05-23 10:25:10
- 1944년생 - 출신지 : 일본 교토 - 선수경력 : 난카이(67~72) -  현역시절포지션 : 내야수     이충남의 최종직위는 감독이 아닌 감독대행이지만 이충남의 경우 절차상의 문제였을뿐 실제로 감독…
이해창, 김일권의 도루인생 (7)
최형석 | 2010-05-23 10:18:08
90년대 이종범과 전준호가 그랬고, 최근 이대형과 이종욱이 그렇듯이 70~80년대 우리나라 야구에서 도루 혹은 주루스피드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이해창과 김일권. 굳이 이들의 대결을 83년편에 국한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83년 국가대표 임무를 …
김봉연의 교통사고 -- 홈런왕의 세대교체 (4)
최형석 | 2010-05-18 14:37:09
가능하면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지만 과거부터 적잖게 프로야구 선수들의 교통사고 뉴스가 나오곤 합니다. 때로는 해태 김대현이나 MBC의 김정수처럼 목숨을 앗아가는 큰 사고도 있었고 생명은 건졌어도 그 후유증에 야구계를 떠나야 했던 일도 있…
1983년 베스트경기 --- 삼미 : 해태의 광주3연전 (3)
최형석 | 2010-05-13 11:55:04
83년 6월 2일, 김진영감독이 그라운드폭력사태로 구속수감되면서 졸지에 지휘자를 잃었던 삼미. 하지만 여전히 삼미는 중간성적 1위팀이었고 감독의 구속이후 이재환 대행체제아래 연승을 거두면서 선두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
 1  2  3  4  5  
  
자동로그인
최형석의 옛날 야구 이야기
이창섭의 MLB마에스트로
하이틴 베이스볼
주간클럽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