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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 프로야구(2) --- 롯데자이언츠(하)
최형석 | 2010-06-10 12:13

투수코치는 커녕 투수를 경험한 단한명의 지도자도 없었던 팀에서 투수력으로 후기리그를 우승하고 결국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롯데.

이것이 바로 에이스중의 에이스, 최동원의 힘이었습니다.

 

81년 실업야구에서 맹활약하며 아마롯데를 우승시킨 후 2년간 그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물 갔다는 표현까지 들어야 했던 국내파 최고투수 최동원은 84년 그의 인생에 최고의 절정기를 맞으면서 단한사람의 힘으로 팀을 우승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게 됩니다.

 

전기리그 9승으로 전년도 승리숫자를 맞춘 최동원은 후기리그 50경기중 롯데가 승리한 29경기에서 혼자 18승 5세이브를 기록하면서 팀승리의 80% 가까이를 책임집니다.

 

장명부의 30승이 엄청나다고 하지만 최동원은 27승+한국시리즈 4승, 그리고 장명부가 하지못했던 팀우승을 시켰으니 누가 더 대단한 기록이라고 해야 할까요.

 

전년도 양상문의 실업행으로 투수력 보강에 차질을 빚었던 롯데는 이 해에도 아마 최고투수를 입단시키는데 실패합니다.

연세대를 졸업하는 윤학길이 군문제를 먼저 해결한다면서 상무에 입단해버린 겁니다.

 

그러면서 롯데는 팀내 주전급 선수 4명을 보내고 삼미의 준에이스 임호균을 데려오는 기상천외한 트레이드를 성사시킵니다.

아직까지도 1대 다(多) 트레이드중 최다인원인 이 트레이드는 장명부와 임호균이 팀내에서 갈등을 보이게 되면서 삼미쪽에서 더 적극적이었는데 롯데는 최동원을 보좌할 2선발급을 얻게되고 간 선수들의 공백은 쏟아져 들어오는 지역내 신인들로 충분히 메꾸면서 매우 만족스러운 결과로 남습니다.

 

동아대출신으로 부산이 낯설지 않았던 임호균은 10승을 올리면서 팀내 다승 2위로 활약했고 특히 벼랑끝에 몰렸던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승리에 발판이 되는 선발호투를 하면서 우승에 기여합니다.

 

그 밖에 신인 배경환이 7승을 올리긴 하지만 그간 활약했던 천창호, 김문희, 이진우 등이 급격하게 노쇠하고 원년 에이스 노상수는 당시로서는 흔치않았던 현역입대를 하면서 팀을 떠나야 했습니다.

거기에 재일교포로 영입한 박덕용은 시즌 단 1승에 머물게 됩니다.

 

7~80년대를 대표하는 포수였지만 장기레이스에서 체력이라는 핸디캡에 걸렸던 심재원과 최동원의 전담포수였던 한문연이 여전히 엇비슷하게 마스크를 쓰는 가운데 엄밀하게 구분해서 한문연의 비중이 더 높아지면서 서서히 세대교체의 기운이 돕니다.

프론트와도 갈등을 보였던 심재원은 결국 이 해를 끝으로 팀을 떠나게 됩니다.

 

여전히 롯데 타선의 핵이었던 김용희와 김용철.

전성기를 맞는 1루수 김용철이 홈런2위, 타격, 타점 3위라는 맹활약을 한 반면, 고질적인 허리부상에 시달리던 3루수 김용희는 2할대중반의 타율과 9개의 홈런으로 이름값을 하지못하지만 김용희도 타점생산만큼은 녹슬지않으면서 53개로 4위에 오릅니다.

 

롯데는 주전 2루수였던 정학수가 투수 노상수와 함께 현역입대라는 폭탄을 맞게 되지만 삼미에서 이적해온 이광길이 수비에서, 국가대표출신 박영태가 공격에서 서로를 커버하면서 2루를 양분했고 원년부터 유격수를 지켰던 권두조도 임호균 카드중 한명이 되어 삼미로 가면서 전년도 중반에 이적해온 정영기가 풀시즌 유격수를 맡게 됩니다.

 

물론 김용철도 있었지만 롯데 타선의 핵은 재일교포 홍문종이었습니다.

계열사인 일본 롯데에서 수급받았던 선수로 일본에서 대부분의 커리어를 2군에서 보낸 30세의 준노장급선수였지만 뛰어난 기본기를 보여주면서 그간 롯데의 아킬레스건이었던 1번타자와 중견수에 대한 공백을 완벽하게 커버하게 됩니다.

홍문종은 타율 2위, 타점 5위, 홈런 10위, 도루 2위로 공격력 전반에 걸쳐 상위권순위에 오를 성적을 거뒀고 당시엔 타이틀이 없었지만 최다안타의 주인공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홍문종은 역전 타격왕을 노리던 시즌 마지막 2경기에서 삼성에 9연속 고의4구를 얻으면서 타이틀획득에는 실패하지만 고의패배와 함께 삼성이 도덕적으로 뭇매를 맞게 되었던 사건의 피해자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됩니다.

 

3할 혹은 3할언저리를 치던 우익수 유두열과 지명타자 박용성이 2할대 초반으로 성적이 급전직하했고 좌익수로 기용된 신인 조성옥도 2할 1푼대의 타율로 기대에 못미칩니다.

 

국가대표 중심타자들이었던 1루수 김민호와 이석규, 외야수 김한조는 포지션 경쟁에서 밀리면서 아직은 기회를 얻지 못했고 유망주 포수 정인교(LG 외야수 정의윤의 부친입니다...)도 선배들의 높은 벽에 막히게 됩니다.

 

2명의 3할타자를 보유하긴 했지만 전년도 해태나 이 해의 삼성같이 막강한 공격력과는 거리가 멀었고 게다가 롯데의 전통적 약점인 상하위 타선의 극심한 편차가 여전히 계속되었지만 중심타자들의 빼어난 타점생산 능력과 함께 한번만 리드를 잡으면 에이스가 그 승리를 지켜주러 나온다는 맹목적인 믿음이 결국 전기리그 4위를 하고도, 후기리그에서 집중력있게 우승까지 차지하게 되는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롯데가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는 과정은 물론 뒤에 다시 쓰도록 하겠습니다. 

 

 


높새바람 10-06-10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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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 선수 이야기는 너무 유명한.. 이제는 전설이 되었네요. 그리고 최동원 선수가 그렇게 많이 나오면, 자연히 포수는 전담포수가 주전이 되지 않았을까요. (18승 5세이브면.. 23경기에 한문연 선수가 나올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네요.)

박영태 지금 롯데 수석코치도 한 시절에 국가대표로 이름을 날렸던 분이었군요.. 하기사 이름 날리지 않은 프로 선수가 어디있을까요.

그런데 당시에는 군 문제 해결이 쉬웠나 보네요? 윤학길 선수가 군 문제 해결을 위해 상무로 간 것이 지금 봐서는 나쁜 선택은 아닌 것 같은데, 이례적이라는 느낌으로 쓰신 것 같습니다. 글 중간에도 롯데 주전들의 현역 입대가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고 말씀하시는 것도 그렇구요. 당시에는 군 문제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나요? 방위 이야기는 얼핏 들은 것 같은데, 그 외에도 다른 방법들이 많았는지요.
최형석 10-06-10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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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출범때 많은 선수들이 군면제혜택을 받았습니다.
적법한 면제도 많았고 편법, 불법도 많았던게 사실입니다. 심지어 선수들의 군대를 최대한 빼주는 것도 구단의 능력중 하나였다고 해도 될 정도였으니까요.
사실 주전급을 두명이나 현역입대자가 나온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기도 하고 롯데프론트의 로비력이 좀 약한 부분도 있었구요.

방위병의 시합출전 관련해서는 첫번째 사례가 나오는 OB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레논 10-06-1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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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후기로 나누었던 시즌인만큼 최동원이 후기에 집중해서 우승을 한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던 거죠. 후기에만 18승이라니... 그런데 그렇게 하고도 막판에 삼성의 장난이 필요했을만큼 겨우 우승을 했으니, 이 해 롯데가 결코 우승 전력이 아니었음은 명백합니다.
늘 이 한국시리즈를 기억하면, 결과적으로 4승을 한 것도 대단하지만, 애초에 1,3,5,7로 최동원이 나와서 이긴다는 기획의 황당함과, 그걸 또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 마인드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최동원 혼자만 그런다고 될 일도 아니니 결국 롯데 전 선수가 다 그런 생각을 할만큼 최동원에 의지했다는 소린데, 그런 무게를 업고도 시리즈를 치러내는 그 마인드가요.  그것이 에이스 중의 에이스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사실 롯데의 다른 투수는 대체 뭔가 싶은 분위기였지요. 심지어 어디를 가도 10승을 할 준에이스급의 임호균조차 6차전에서 팀이 앞서자 바로 지난 시합에 완투를 한 최동원에게 마운드를 넘겼으니...
대꺼등? 10-06-1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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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까지..

더 정확히 말해...
스티브 유 선생과...

유력한 정치인이셨던 그분의 자제 사건..
이 터지기 전까지...

부유층 상류층 연예인 유명 운동선수중

군대 갔다가 온 사람들 거의 없습니다....

궁금하시다면....
인터넷을 이용해 지금의 40대 사회 각분야의 유명인사들 프로필 한번 알아보시죠....

군대 갔다가 온 사람들
거의 없습니다.....
포수 진갑용 10-06-1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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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1984년의 프로야구 상황이 눈앞에 있는듯 합니다.
레논 10-06-18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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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리그 막판에 최동원이 타석에 서서 2루타를 날리던 장면이 기억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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