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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 프로야구(1) --- 롯데자이언츠(상)
최형석 | 2010-06-07 02:34

프로야구 3년째.

83년과 마찬가지로 전후기 50경기씩, 총 100경기 시즌으로 펼쳐진 84년시즌은 전후기제도의 가장 나쁜 폐단을 보여주면서 결과적으로 제도변경을 불러일으킨 시즌입니다.

 

83년, 2개팀에 공급된 재일교포들의 수준높은 기량을 본 나머지 구단 대부분이 자체적인 스카웃에 나서면서 보유한도인 2명씩을 영입했고 이는 각팀 전력에 큰 보탬이 됩니다.

 

여전히 지역신인들을 모조리 스카웃할 수 있는 신인선발제도가 계속되었지만 80년대부터 고교야구의 평준화시대가 찾아와 고른 기량의 신인들이 각팀에 골고루 공급된 것도 재일교포 영입과 함께 각구단 전력평준화에 기여하게 됩니다.

 

기준에 따라서 순위가 대혼란을 일으킨 시즌이지만 KBO의 공식순위는 한국시리즈 우승팀을 시즌 1위, 준우승팀을 2위, 그외의 팀들은 시즌승율로 순위를 가리기 때문에 이 순서에 입각해서 팀을 소개합니다.

 

 

1) 롯데자이언츠

 

롯데는 84년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면서 84년 1위에 오른 팀이었지만 시즌승율로 따지면 6개팀중 4위를 차지한 팀이기도 합니다.

즉 결과는 훌륭했지만 시즌내내 좋은 운영을 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84년 롯데의 선수단입니다.

 

<감독> * 강병철

<코치> * 이희수, * 서말구, * 도위창

<투수> 최동원, 천창호, 배경환, 이진우, 이윤섭, * 임호균, * 김재열, * 조용철, * 안창완, * 이문한, * 배종문, * 박덕용

<포수> 심재원, 한문연, * 정인교

<내야수> 김용희, 김용철, 김성호, 박영태, 정영기, * 이광길, * 이석규, * 김민호, * 김진근

<외야수> 김성관, 박용성, 유두열, 김석일, 김재상, * 김한조, * 조성옥, * 홍문종

 

 

명단만 봐도 알 수 있듯 감독, 코치를 비롯해서 많은 선수들의 이름이 바뀐 시즌입니다.

 

전년도 37세의 나이로 임명된 강병철 감독대행은 무난한 팀운영으로 대행딱지를 떼고 정식으로 2대감독에 취임합니다.

결국 롯데는 이해에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에 강병철감독은 30대에 우승감독이 된 것이고, 아직까지 최연소 우승감독의 기록을 보유하게 됩니다.

 

코치진으로 김명성, 최주억, 두 원년코치를 해고하고 강병철감독보다 2년, 실질적으로 한살이 어렸던 이희수 당시 천안북일고 감독을 영입하게 됩니다.

부산상 출신으로 한일은행에서 선수생활을 한 강병철감독과 서울 성남고 출신에다 농협에서 뛰었던 이희수코치는 이전까지 학교나 현역시절 팀에서 겹치는 부분이 없던 사이였는데 이 해 롯데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후 뒤에 빙그레에서 계속 호흡을 맞추게 됩니다.

 

둘다 내야수(강감독은 3루, 이코치는 유격수) 출신으로 굳이 이들 둘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김영덕감독의 각별한 후배들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강병철감독은 김영덕감독의 한일은행 후배이자 제자였고 이희수코치는 프로야구출범이전 천안북일고에서 감독과 코치로 한솥밥을 먹던 사이입니다.

 

롯데는 이희수코치외에 전혀 새로운 코치를 영입하지 않은채 뜬금없이 국가대표 육상선수 출신인 서말구씨를 선수겸 코치로 영입합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연수를 받고온 박종환 신임전무의 아이디어였는데 확실히 일본에서는 트레이닝코치로 야구선수출신이 아닌 육상선수를 기용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하지만 십여명의 전문코치들이 있는 가운데 있을 법한 얘기였고 감독밑에 실질적으로 전문코치가 한명밖에 없는 팀에 비야구인 코치기용은 아무리봐도 무리한 결정이었습니다.

 

롯데는 (아직도 깨지지않은)100미터 한국기록 보유자 서말구씨를 주루코치로 영입하면서 대주자로도 활용하겠다고 했지만 슬라이딩이나 투구폼을 읽는 타이밍을 전혀 깨우치지 못한 상태에서 제아무리 스피드가 뛰어난 단거리선수라고 해도 실전에 투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서말구코치는 실전에는 단한차례도 나오지 못한채 코치로만 근무하게 되는데 그의 주법이나 트레이닝기술이 어느정도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롯데는 그를 3년이나 코치로 기용하게 됩니다.

 

대신 롯데는 코칭스텝 부족의 대안으로 은퇴무렵이었던 주장 김성관에게 코치역할을 하게끔 하다가 이듬해 정식으로 코치발령을 내면서 최초로 프로선수출신 코치로 육성합니다.

 

이후 롯데가 비상하게 되는 후기리그부터 일본 롯데오리온즈의 2군감독으로 재직하던 도이 쇼스케를 수석코치로 영입하면서 코칭스텝을 보강합니다.

 

전년도 삼성에서 어설프게 외국인과 다름없는 재일교포 코치를 영입해 실패를 한 사례가 있었는데 이번 롯데의 경우에는 재일교포도 아닌 순수 일본인을 코치로 영입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도이코치는 처음 한국에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76년 롯데기업에서 아마추어 실업팀을 창단할 때 코치로 영입되어 약 4년간의 한국생활을 하면서 김동엽, 박영길 감독을 보좌한 이력이 있었습니다.

그후 80년에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4년만에 다시 내한하게 된 것인데 뒤에 90년무렵 다시 영입된 것까지 총 세번의 한국생활을 하게 됩니다.

 

롯데는 일본인이 한국에서 코치생활을 하는 것이 자칫 거부반응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판단, 도이코치의 이름을 도위창이라는 한국명으로 개명하게 합니다.

 

과거 한국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한국인의 정서와 한국야구를 완벽하게 이해했던 도위창코치는 젊디젊은 감독을 훌륭하게 보좌했고 행여 감독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최대한 자신을 낮추면서 롯데의 후기리그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전년도 시행착오를 거듭한 삼성의 이충남 감독대행의 케이스와 여러모로 비교되는 사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롯데는 이해에 야구인출신의 박종환전무를 구단임원으로 영입하면서 구단행정을 일임하게 됩니다.

한국프로야구 탄생에 큰 역할을 했다가 경남고, 동아대 출신이라는 인연으로 롯데구단에 합류하게 된 것인데 구단 실무자가 야구인 출신이었기 때문에 현장의 고충을 이해하는 앞선 행정력을 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현장의 영역을 침범하는 경우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는 인사로 이 박종환전무는 80년대 롯데구단과 뗄 수 없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표적인 에피소드로 박종환전무는 87년 강병철감독의 계약만료와 함께 도위창코치를 감독으로 임명하려 하지만 외국인감독이 아직은 시기상조인 시절이라 여론과 팬들의 거센 반발로 무산된 적도 있었는데 이러한 일들을 비롯 최동원의 아버지와 충돌했던 일 등은 뒤에 다시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높새바람 10-06-0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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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m 신기록은 오늘 깨졌습니다.^^
서말구 씨가 실제 코치로 활동했다라... 그런데 도움이 되서 쓴 건지.. 아님 그냥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3년 쓴 건지는.. 이건 서말구 씨 본인에게 물어봐야 알겠네요.

우승 전력이 아닌 것 같은데.. 우승을 한 팀 같네요.
아무리 봐도..뭔가 부족해 보이는 느낌은... 쩝.
레논 10-06-0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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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선발진과 최강의 계투진을 가진 팀 같은데요 뭘. ^^

그게 최동원의 힘이겠지요. +a를 만들어내는.
고교때도 최동원을 제외하면 경남고가 우승전력은 아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근데 롯데는 늘 우승 전력이 아닌 것 같은데 우승하지 않았나요? ^^
그건 롯데의 저력이라고도 할 수있겠군요.
최형석 10-06-07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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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100미터 신기록소식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 글을 쓰고 몇시간 있다가 이런 뉴스가 나오다니 기분이 묘하네요.
부경자이언츠 10-06-08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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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위창 코치를 감독으로 승격시키지 못하고 성기영 어우홍 김진영 이런사람들을
줄줄이 영입하면서 롯데야구 암흑기 1기를 맞이하는 비극일지도 모르죠..
물론 강병철감독이 두차례 우승으로 이름 날렸다해도  창단감독이였던 박영길
강병철 성기영 어우홍 김진영 줄줄이 개판쳐놨던 롯데야구 역사라고 봐야죠..
포수 진갑용 10-06-1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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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 명단에 있는 당시 정인교 선수는 지금 상무에 있는 정의윤 선수 아버지가 맞나요??
최형석 10-06-10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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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올린 하편에서 썼는데... 맞습니다.
휘지않는 슬라이… 10-07-2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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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철 안창완  아쉬운 이름들이군요

  조성옥선수도  명성많큼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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