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스페셜 > 오감도 > 최형석의 옛날야구이야기

 
83년 한국시리즈 <해태 : MBC>
최형석 | 2010-06-01 08:32

일찌감치 후기리그를 포기했던 해태, 그리고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장명부의 삼미가 자중지란에 빠지면서 결국 김동엽 체제로 새롭게 팀을 정비한 MBC의 우승으로 후기리그는 끝이 납니다.

 

이제 전기우승팀 해태타이거즈와 후기우승팀 MBC청룡간의 한국시리즈.

 

10월 10일로 예정되어 있던 한국시리즈가 10월 9일 버마 아웅산사태라는 국가적인 참사로 인해 10월 15일에 벌어지게 됩니다.

동남아순방중이던 대통령 일행이 버마, 지금의 미얀마의 아웅산국립묘지를 방문하던 중 폭발물테러가 일어나면서 대통령 수행원 17명이 숨진 사건으로, 국민장 기간동안 정규방송을 비롯 국내외의 모든 크고작은 행사가 연기된 것입니다.

 

일찌감치 KS를 준비하던 해태는 물론, 2위와 5경기차로 여유있게 후기 우승을 결정지은 MBC 모두 일정상의 유, 불리함은 없었다고 보여지는데 양팀 모두 5일간의 시간적인 공백은 똑같은 조건이었지만 그 사이 MBC는 치명적인 내부분란을 겪게 됩니다.

 

당초 김동엽감독은 선수들에게 우승보너스 지급을 약속한 바 있었고 그 보너스를 두고 선수들은 후기우승을, 구단에서는 한국시리즈 우승이라고 각각 동상이몽을 꾸고 있었던 겁니다.

 

공백기없이 내리 한국시리즈가 열렸다면 그런게 문제되지 않은 채로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겠지만 5일의 기간은 왜 보너스가 안나오냐면서 불만을 터뜨리기 충분한 시간이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뒤에 故김동엽감독의 자서전이나 팀의 주축이었던 김재박의 회고를 통해 알려지게 되는데 그 1주일전만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온데간데 없어지고 완전히 초상집같은 팀으로 변했다고 하니 당시의 MBC의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어찌되었건 10월 15일 한국시리즈는 벌어집니다.

 

<1차전> 해태 7 - 4 MBC

 

MBC는 장명부와 경쟁속에 방어율상을 차지하면서 페이스가 좋았던 에이스 하기룡을 두고 이광권을 선발로 기용한다는 연막작전을 피웠지만 선발로 나온 투수는 오영일이었습니다.

해태는 당연히 20승의 에이스 이상윤의 선발.

 

1회말 김일권의 안타, 김일환의 사구로 무사 1.2루를 만든 후, 3번 김성한의 타구가 배트가 부러지면서 배트 쪼가리와 공이 함께 3루로 날아간 것을 MBC 3루수 이광은 피하면서 수비를 하다가 실책을 저질러 무사만루의 찬스를 만듭니다.

김동엽감독은 수비수가 몸을 사린다면서 이광은을 심하게 질책하면서 그렇지않아도 분위기가 다운된 팀을 더욱 어둡게 합니다.

 

그후 4번 김봉연이 삼진을 당하지만 5번 김종모가 3루 라인선상 2루타로 2점을 선취하고 이후 김무종의 땅볼로 한점을 더 내면서 3-0으로 해태가 앞서갑니다.

 

2회에 김일권의 3루타로 1점을 더 추가하고 4,5회에 추가득점을 하면서 7-0으로 시합이 일찌감치 결정됩니다.

MBC는 6회 2점, 8회 2점을 따라가지면 결국 7-4로 1차전을 내주는데 초반 오영일의 난조때 투수교체가 없었던 것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게 됩니다.

 

결국 이상윤의 완투승, 오영일의 완투패.

 

<2차전> 해태 8 - 4 MBC

 

광주에서 1차전 단 한경기만 벌어지고 잠실로 옮겨서 벌어진 2차전.

해태의 선발은 예상한 대로 재일교포 주동식. 하지만 MBC의 선발은 또다시 하기룡이 아닌 좌완 유종겸이었습니다.

 

해태는 3회 하위타선인 8번 서정환이 안타를 치고 9번 차영화가 볼넷을 고른 후 더블스틸, 무사 2.3루에서 김일권의 삼진후 대타로 나온 양승호가 2루타를 치면서 또다시 선취점을 올립니다.

 

MBC도 4회 3안타로 1점을 따라갔지만 해태는 김용남으로 투수를 교체하면서 후속실점을 막아냅니다.

 

해태는 5회 또다시 MBC 3루수 이광은이 병살타성 타구를 악송구해 안타없이 2점을 추가했고 7회에는 4번 김봉연에게 그의 커리어에서 거의 해본적이 없던 희생번트를 대게 하면서 1점을 추가합니다.

MBC가 7회 무사만루에서 김정수의 2루타와 김바위의 땅볼로 3점을 따라가 5-4까지 추격을 당하고 나니 김봉연의 번트가 더욱 빛을 발하게 되죠.

 

숨가빴던 접전에서 해태는 8회초 집중 4안타로 3점이나 더 추가하면서 결국 8-4로 2연승을 거두게 됩니다.

MBC로서는 도무지 투수교체 타이밍을 잡지 못하면서 1차전에 이어 2차전도 유종겸의 완투패로 기록됩니다.

 

<3차전> 해태 5-3 MBC

 

물론 여전히 장소는 잠실이었지만 중립구장으로 해태의 홈경기로 치뤄진 경기.

하루를 쉬고 난 후 해태는 2차전에 이어 주동식을 연속으로 선발기용했고 MBC의 선발은 또다시 하기룡이 아닌 이광권.

 

1회 김봉연의 안타(실책은 아니었지만 또다시 이광은의 글러브를 맞고 뒤로 빠진 타구)로 1점을 선취하고 3회 무사 2.3루의 찬스에서 김봉연이 등장하자 MBC는 비로소 이번 시리즈 최초로 투수교체를 감행합니다.

드디어 에이스 하기룡의 등장.

 

하지만 하기룡이 던진 초구를 김봉연은 그대로 3점홈런으로 연결시킵니다.

 

MBC는 6회부터 등판한 이상윤으로부터 김재박의 안타와 이해창의 땅볼로 3점을 따라가지만 7회 김봉연의 땅볼로 1점을 더 추가하면서 5-3으로 경기를 끝냅니다.

김봉연이 5타점을 혼자 기록하면서 해태의 3연승. 이날의 승리로 이제 한국시리즈는 이변이 없는 한 해태쪽으로 기울었다고 해도 무방했습니다.

 

<4차전> 1-1 무승부

 

해태는 전날 구원등판한 이상윤을 선발로 내세워 시리즈를 끝내려 했고, MBC는 이해 승율왕의 주인공인 두번째 에이스 이길환을 역시 처음으로 선발 기용합니다.

 

치열한 투수전속에 해태는 2회 김봉연의 2루타와 김무종의 땅볼로 또다시 선취점을 올리면서 그대로 끝나는듯 했지만 MBC가 9회말 2사 3루에서 6번 김바위의 빗맞은 안타로 극적인 동점에 성공합니다.

 

그후 양팀은 15회까지 가는 연장승부끝에 더이상의 점수를 내지못하면서 결국 무승부로 끝이 납니다.

15회까지 16안타(해태), 12안타(MBC) 속에 단 1점씩만을 낸 것인데 해태는 이상윤에 이어 9회부터 김용남이 이어던졌고 MBC는 이길환을 3회에 강판시킨후 오영일과 하기룡이 이어 던졌습니다.

 

11회말 2루주자 이해창이 땅볼타구때 홈까지 파고들다가 김무종의 블로킹에 막히면서 간발의 차이로 아웃된 것이 MBC로서는 이번 시리즈 1승이라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날린 통한의 장면이 됩니다.

 

<5차전> 해태 8-1 MBC

 

해태는 3명의 에이스들중에 그나마 힘이 남아있는 주동식을 선발로, MBC는 거의 전력외로 분류되던 이원국을 깜짝 선발로 내세우면서 해외파간의 선발맞대결이 됩니다.

 

하지만 해태는 이원국과 5회부터 나온 오영일을 상대로 찬스때마다 착실하게 점수를 내면서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짓습니다.

마지막 우승의 순간은 7회부터 구원나온 에이스 이상윤의 몫.

 

당초 타력은 해태쪽이, 투수력은 MBC가 우세하다는 평가였지만 전체적인 투수들의 평균방어율만을 놓고 평가한 것이었고 해태는 이번 시리즈에서 단 세명의 투수만을 썼기 때문에 이들만의 성적을 놓고보면 투수력마저도 해태가 압도했던 전력이었습니다.

 

교통사고에서 회복하며 맹활약한 김봉연이 MVP에 올랐고, 43세의 젊은 감독 김응용이 첫번째 우승을 기록한 시리즈가 되죠.

 

자중지란의 MBC는 시리즈 내내 납득할 수 없는 투수교체로, 시리즈가 끝난후 구단에 항거하는 김동엽감독이 일부러 승부를 내준 것이 아니냐는 일간스포츠의 보도까지 나올 정도로 팀분위기가 어수선했는데, 결국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음에도 이러한 분위기속에 김동엽감독은 반시즌만에 옷을 벗어야 했습니다.

 

해태의 한국시리즈 우승글을 끝으로 83년편을 마치고 이제 최동원의 84년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높새바람 10-06-01 10:10
답변 삭제  
최형석님께서 쓰신 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투수교체가 의아하네요.
질은 몰라도 양적으로는 MBC 투수진이 결코 밀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왜 완투 시키다가 패배를 자초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보너스로 떨어진 사기는 사기지만, 투수 운용은 또 다른 문제일텐데요.

해태는 반대로 좋은 투수 운용과 집중적인 활용으로 승리를 잘 챙기는 모습인데...
MBC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운영이네요.
그렇다고 이미 고인이 되신 분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고...,
hongdu 10-06-01 15:49
답변 삭제  
희미한 기억속의 사건들을 돼세길수 있는 글 잘 읽엇습니다.
롯데GIANTt 10-06-05 21:38
답변 삭제  
84년좀빨리올려주세요 ㅜㅜ
100mph 10-06-09 00:16
답변 삭제  
잘 읽었습니다:)
 
 

Total 62
84년 프로야구(6) --- OB베어스(하) (3)
최형석 | 2010-06-24 15:57:06
84년의 OB는 김성근감독의 팀답게 지금까지처럼 분명하게 포지션별 주전선수를 설명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주전 1루수 신경식의 방위입대와 3루수 양세종 허리부상으로 전체 포지션이 흔들리면서 그간 어느 구단에서도 …
84년 프로야구(5) --- OB베어스(상) (1)
최형석 | 2010-06-22 22:03:00
3) OB베어스   김성근호의 출범. 김영덕감독이 삼성으로 팀을 옮기면서 김성근이 2대감독에 취임했고 전임감독과는 완전히 다른 팀컬러를 만들면서 OB를 전혀 새로운 팀으로 변모시킵니다.   OB는 84년도 종합성적 1위였지만 …
84년 프로야구(4) --- 삼성라이온즈(하) (2)
최형석 | 2010-06-19 12:23:35
첫해는 장명부, 2년차에는 최동원의 성적에 가리긴 했지만 입단 2년간 17승, 19승을 올린 김시진의 성과를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김일융이라는 초거물 투수가 영입되었음에도 굳이 한명만 꼽자면 삼성의 에이스는 김시진이었고 특히 황규봉, …
84년 프로야구(3) --- 삼성라이온즈(상)
최형석 | 2010-06-19 12:23:05
2) 삼성라이온즈   83년 최상의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지휘권의 대혼란으로 충격의 하위권으로 떨어졌던 삼성. 선수단만큼이나 지도력 보강에 힘을 쏟은 결과 한국의 드림팀 코칭스텝이 탄생합니다.   84년의 삼성 선수단입니다…
84년 프로야구(2) --- 롯데자이언츠(하) (6)
최형석 | 2010-06-10 12:13:44
투수코치는 커녕 투수를 경험한 단한명의 지도자도 없었던 팀에서 투수력으로 후기리그를 우승하고 결국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롯데. 이것이 바로 에이스중의 에이스, 최동원의 힘이었습니다.   81년 실업야구에서 맹활약하며 아…
84년 프로야구(1) --- 롯데자이언츠(상) (7)
최형석 | 2010-06-07 02:34:33
프로야구 3년째. 83년과 마찬가지로 전후기 50경기씩, 총 100경기 시즌으로 펼쳐진 84년시즌은 전후기제도의 가장 나쁜 폐단을 보여주면서 결과적으로 제도변경을 불러일으킨 시즌입니다.   83년, 2개팀에 공급된 재일교포들의 수준높…
83년 한국시리즈 &lt;해태 : MBC&gt; (4)
최형석 | 2010-06-01 08:32:01
일찌감치 후기리그를 포기했던 해태, 그리고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장명부의 삼미가 자중지란에 빠지면서 결국 김동엽 체제로 새롭게 팀을 정비한 MBC의 우승으로 후기리그는 끝이 납니다.   이제 전기우승팀 해태타이거즈와 후기우승팀 MBC…
이상했던 MVP, 신인왕 선정 (4)
최형석 | 2010-05-31 11:18:37
MVP와 신인상의 선정은 83년 한국시리즈 3차전중, 그러니까 시점상으로 한국시리즈가 먼저 일어난 일이기는 하지만 한국시리즈를 끝으로 83년편을 마감할 예정이므로 먼저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 해에 최우수선수와 신인상의 유력후보자들…
한국프로야구 드래프트史 --- 1983년 (3)
최형석 | 2010-05-30 15:12:33
드래프트 명단 ---  http://blog.naver.com/pcrang01/140016263875    83년이라면 프로야구 2년째 들어서는 해입니다. 사실 82~85년까지 연고지내에 원하는 모든 선수를 무제한으로 뽑을 수 있었던 시절이니만큼 이 기간의 …
백인천, 박철순의 몰락 (3)
최형석 | 2010-05-30 15:11:11
82년편에서 가장 활약이 뛰어난 두 사람을 묶어서 글을 쓴적이 있습니다. 둘다 해외파로 국내에 복귀해 한수 위의 기량을 펼쳤고 박철순은 결국 투수부문 3관왕(다승, 방어율, 승율)을 차지하면서 MVP까지 획득, 백인천은 타격부문 3관왕에 버금가…
서정환, 정영기, 차동열... 열리기 시작한 트레이드 시장 (3)
최형석 | 2010-05-24 08:32:02
초창기 우리 프로야구는 철저하게 지역연고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도 각지역을 분할하는 연고지는 존재하지만 현재는 드래프트를 통해 타지역의 선수를 입단시키고 있는데 반해 당시 프로팀들은 연고지내 선수들을 입단시킬 수 있는 권리…
삼성 이충남 감독대행 - 특별한 의미의 \ 감독대행\ (3)
최형석 | 2010-05-23 10:25:10
- 1944년생 - 출신지 : 일본 교토 - 선수경력 : 난카이(67~72) -  현역시절포지션 : 내야수     이충남의 최종직위는 감독이 아닌 감독대행이지만 이충남의 경우 절차상의 문제였을뿐 실제로 감독…
이해창, 김일권의 도루인생 (7)
최형석 | 2010-05-23 10:18:08
90년대 이종범과 전준호가 그랬고, 최근 이대형과 이종욱이 그렇듯이 70~80년대 우리나라 야구에서 도루 혹은 주루스피드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이해창과 김일권. 굳이 이들의 대결을 83년편에 국한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83년 국가대표 임무를 …
김봉연의 교통사고 -- 홈런왕의 세대교체 (4)
최형석 | 2010-05-18 14:37:09
가능하면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지만 과거부터 적잖게 프로야구 선수들의 교통사고 뉴스가 나오곤 합니다. 때로는 해태 김대현이나 MBC의 김정수처럼 목숨을 앗아가는 큰 사고도 있었고 생명은 건졌어도 그 후유증에 야구계를 떠나야 했던 일도 있…
1983년 베스트경기 --- 삼미 : 해태의 광주3연전 (3)
최형석 | 2010-05-13 11:55:04
83년 6월 2일, 김진영감독이 그라운드폭력사태로 구속수감되면서 졸지에 지휘자를 잃었던 삼미. 하지만 여전히 삼미는 중간성적 1위팀이었고 감독의 구속이후 이재환 대행체제아래 연승을 거두면서 선두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
 1  2  3  4  5  
  
자동로그인
최형석의 옛날 야구 이야기
이창섭의 MLB마에스트로
하이틴 베이스볼
주간클럽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