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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했던 MVP, 신인왕 선정
최형석 | 2010-05-31 11:18

MVP와 신인상의 선정은 83년 한국시리즈 3차전중, 그러니까 시점상으로 한국시리즈가 먼저 일어난 일이기는 하지만 한국시리즈를 끝으로 83년편을 마감할 예정이므로 먼저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 해에 최우수선수와 신인상의 유력후보자들은 한국시리즈를 치르고 있는 해태와 MBC 선수단과는 거의 연관이 없었기 때문에 시리즈에 앞서 선정하건, 지나서 선정하건 큰 의미는 없었습니다.

 

MVP (Most Valuable Player)...

 

상의 취지를 놓고볼때 성적은 물론 타의 모범을 보여야 하는, 즉 인성면에서도 훌륭한 선수여야 한다는 것이 MVP의 덕목중 하나이기는 하나 특별히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선수도 아니고 어느 스포츠에서도 그 상을 투표하는 기자들이 인품까지 판단해서 표를 던지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경우일 것입니다.

 

어차피 KS에 오른 두팀도 아닌 선수들이 대상이라 팀성적과는 상관없이 개인성적만으로 MVP를 가려야 하는 상황.

30승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올린 삼미 장명부는 홈런, 타점 2관왕에 오른 삼성의 이만수에게 압도적인 득표차로 밀리면서 MVP에 선정되지 못합니다.

 

1위인 이만수가 95점, 2위 장명부가 50점, 3위인 장효조가 49점.

 

시즌내내 보여준 이기적인 성격, 툭하면 벌어지는 빈볼과 같은 사건이 투표하는 기자들에게 MVP감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었던 것은 당연하지만 그러한 점이 반영되었다고 하기에도 거의 압도적인 득표차였습니다.

 

처음으로 영광스러운 MVP를 차지한 이만수는 이듬해 홈런, 타점과 함께 타율 1위까지 차지하면서 트리플크라운을 차지하지만 오히려 이때는 시즌막판에 타율관리를 했다는 이유로 MVP를 수상하지 못합니다.

기자들의 주관적인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일례를 보여준 것이죠.

 

83년의 신인왕 선정은 더욱 납득이 어렵습니다.

 

타율 1위를 차지한 삼성 장효조가 46점을 얻으면서 2위. 타율 4위의 OB 박종훈이 87점을 얻으면서 투표결과 1위.

3위는 44점을 얻은 삼성의 김시진.

 

실업야구 경력 5년의 장효조가 실업경력 1년의 박종훈에 비해 나이도 많고 신인왕을 받기에는 참신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기자들의 표가 몰린 것이었습니다.

 

처음서부터 프로행이 1년 보류되었던 82년의 국가대표맴버들은 신인왕 자격을 주지않던지 했으면 그 대상자들도 승복을 했을텐데 일단 후보에는 올려놓고 신인같지 않은 신인이라는 이유로 객관적인 성적이 분명 앞서있는 선수에게 표를 주지않은 것은 납득하기 힘든 해프닝이었습니다.

 

당시 MVP와 신인왕 선정에 참가한 기자들이라고 해봐야 모두 12명.

워낙에 스포츠기자들의 숫자가 적었던 시절이라 어쩔 수 없는 인원이기는 했지만 몇명의 친분있는 기자들만 입을 맞춰도 한쪽으로 몰릴 수 밖에 없는 상황.

 

지금은 모두 대기자급 혹은 전설적인 원로기자의 대우를 받고 있는 분들이지만 그 숫자가 적었을수록 객관적인 기록에 의거해서 표를 행사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투표결과였습니다.

 

 

 


높새바람 10-05-31 11:25
답변 삭제  
프로농구는 원년 이듬해 시즌인 1997-98시즌 신인상 수상 당시에 농구대잔치에서 실업 소속으로 뛴 선수들의 신인상 수상을 제도적으로 보류했습니다. 이는 프로 출범 당시에 군 복무중이라 참가하지 못했던 이상민, 조성원, 추승균의 신인상 수상을 막기 위한 장치였고, 그래서 프로 최초의 신인상은 주희정에게 돌아갔습니다.

프로야구도 그런 제도적인 묘를 살렸다면, 사실 모두가 납득했을 거라고 봅니다.
신인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명성이 너무 높았던 선수들이니, 진짜 신인에 어울리는 선수에게 상을 주자는 것이었겠죠.
그런 장치를 마련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장명부는... 음.. 일종의 교포에 대한 차별이 아니었을까요?
최형석 10-05-31 11:29
답변 삭제  
본문에는 쓰지 못했지만 결국 그런 이유죠.
차별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재일교포=반외국인이라는 생각에 외국선수에게 상을 주고 싶지않다는...
호돌이의꿈 10-05-31 15:46
답변 삭제  
장효조 선수가 참신성이 떨어진다라고 해서 신인왕 못 받은 건 알고 있었는데

박종훈 선수도 실업에서 뛰었었군요

최형석님의 글을 읽으면 모르는 사실을 알게 돼네요

정말 좋은 글 감사합니다
리딩히터 10-08-14 11:26
답변 삭제  
높새바람님/ 제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르군요. 이상민 등 이른바 농구대잔치 세대에게도 분명 같은 기회를 주었습니다, 신인왕을 탈 수 잇는 기회를 제공했지만, 장효조-박종훈과 같은 이유로 이상민은 엠뷔피 먹고 주희정은 신인왕 먹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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