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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 드래프트史 --- 1983년
최형석 | 2010-05-30 15:12

드래프트 명단 ---  http://blog.naver.com/pcrang01/140016263875 

 

83년이라면 프로야구 2년째 들어서는 해입니다.

사실 82~85년까지 연고지내에 원하는 모든 선수를 무제한으로 뽑을 수 있었던 시절이니만큼 이 기간의 선수 스카웃은 드래프트사에 있어 큰 의미는 없습니다.

지역출신중 좋은 선수들이 있으면 스카웃을 잘한 것이고, 없으면 못한 것이 되니까요.

 

굳이 83년부터 이글을 시작하는 것은 드래프트제도의 변천과정을 처음부터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고 또하나 유일하게 선수를 나눠가져야 했던 두팀, MBC와 OB간의 서울지역 선수나누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두팀의 서울출신 1차 드래프트에 대한 설명부터 해볼까요.

 

이 당시 MBC와 OB의 합의사항은 서울지역 선수에 대해 MBC 2 : OB 1의 비율로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은 OB가 충청도를 연고지로 선택하면서 열악했던 충청연고 선수들만으로 한 팀을 꾸리기가 힘들었기 때문이고, 또 서울출신 선수들을 한팀이 독식하는 것은 특정팀에 너무 유리한 결과가 나올 것이기 때문에 서울연고팀을 견제하고자 하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합의사항은 OB가 서울로 연고지를 바꾸는 84년까지 이어지다가 완전하게 서울팀이 된 85년부터는 1:1의 동등한 권한을 갖는 것으로 변경됩니다.

 

그런데 2:1의 비율이라고 해도 지금처럼 순서대로 두명을 호명한후 한명을 호명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복잡한 방법을 택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투수와 야수를 나눠서 두팀이 희망하는 선수명단을 제출한 후에 양팀에서 공통적으로 희망하는 선수에 한해 드래프트를 하였고 여기서 MBC가 두명을 뽑고, OB가 두명, 그리고 다시 MBC가 두명을 뽑는 식이었습니다.

 

명단을 받고나니 모두 10명의 공통지명 선수가 있었는데 투수가 6명, 야수가 4명이었습니다.

 

투수에 경우 MBC가 오영일과 김용수를, OB가 장호연과 정선두를 선택하고 다시 MBC가 기세봉과 신계석을 선택합니다.

장차 양팀의 기둥이 될 김용수와 장호연, 두 서울권의 라이벌 투수는 여기서 운명적으로 팀이 갈라진 것이죠.

 

야수에선 균형이 맞게 두명씩 묶은 다음에 OB가 먼저 박종훈과 이선웅을, MBC가 김정수와 박철영을 지명한 후 더이상 겹치는 선수가 없어 드래프트는 여기서 종료됩니다.

국가대표로 뛰기 위해 프로행을 거부하고 실업에서 1년을 보낸 박종훈은 불의의 부상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입지는 못하면서 1년을 허송세월하긴 했지만 대학시절의 명성을 기억하는 OB가 그를 야수 최대어로 판단하면서 그를 지명한 것이고 결국 83년도 신인왕의 주인공이 됩니다.

 

여기서 한가지 MBC로 간 오영일과 OB로 간 이선웅, 두 인하대출신 선수를 인천연고의 삼미가 선수양도를 강력하게 희망하면서 결국 선린상 출신의 이선웅은 OB의 지명을 받고도 대학시절 스승이 새롭게 감독으로 부임한 삼미의 유니폼을 입게 됩니다.

원래 출신대학은 연고와 아무 상관이 없고 고교졸업이 출신지의 기준이 되므로 최약체팀의 사정을 감안해달라는 삼미측의 요청을 거절해도 무방했지만 당시 내야수자원이 많았던 OB는 전년도 우승팀다운 대승적 차원에서 이선웅을 조건없이 양도했고, 이광길이라는 충청연고지만 역시 인하대를 졸업한 내야수도 지명을 하지 않으면서 삼미에 입단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첫번째 카드였던 오영일을 내줄 수는 없었던 MBC도 대신 외야수 최홍석을 삼미에 양도합니다.

 

MBC는 이밖에 김문영과 이승희 등을 단독으로 지명했고 OB는 충청도 연고인 한대화, 정구선, 송일섭을 별도로 1차지명했습니다.

 

MBC, OB 이외의 팀들은 경쟁없이 뽑고 싶은 연고지내의 선수들을 뽑았습니다.

프로 첫해에 합류하지 못했던 김시진, 최동원, 임호균 등의 국가대표선수들은 여기서 고향팀의 부름을 받게 됩니다.

 

한편 83년에도 2차지명이 있기는 했습니다.

이 당시의 2차지명은 드래프트라기 보다는 고향팀의 부름을 받지 못한 선수들, 즉 지명을 포기한 선수들 중에 희망하는 선수를 데려간 형식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83년 2차지명중 눈여겨 볼 선수는 서울출신으로 서울팀들의 외면을 받고 해태로 간 양승호입니다.

양승호는 프로원년 고려대 재학중이었으나 프로행을 원하면서 대학을 중퇴했지만 고향팀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서 상업은행에 입단해서 1년을 보내다가 83년에 비로소 프로팀의 옷을 입게 됩니다.

 

또 해태는 코치중에 한명이었던 유남호를 만약을 대비해서 선수로도 활용하고자 2차지명(유남호도 서울출신이었으므로...)절차를 밟아 선수등록을 했지만 실제 시합에 출전한 적은 없었습니다.

 

 

 


높새바람 10-05-31 00:40
답변 삭제  
당시 유남호 코치가 나이가 젊은 편이었나보네요. 선수 등록도 가능할 정도면요.
최형석 10-05-31 11:26
답변 삭제  
51년 9월생이니 당시 나이 만 31세로 49년생들인 OB의 김우열, 윤동균보다 어렸고 소속팀 선수인 김봉연(52년 1월)과 거의 비슷한 연배였습니다.
높새바람 10-06-07 11:25
답변 삭제  
김봉연과 비슷한 연배라면, 선수로 뛰어도 상관 없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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