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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천, 박철순의 몰락
최형석 | 2010-05-30 15:11

82년편에서 가장 활약이 뛰어난 두 사람을 묶어서 글을 쓴적이 있습니다.

둘다 해외파로 국내에 복귀해 한수 위의 기량을 펼쳤고 박철순은 결국 투수부문 3관왕(다승, 방어율, 승율)을 차지하면서 MVP까지 획득, 백인천은 타격부문 3관왕에 버금가는 타율 1위, 홈런, 타점 2위라는 맹활약을 합니다.

 

하지만 83년시즌 이들 두사람의 이름은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었습니다.

 

박철순은 전년도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다친 허리를 안고 한국시리즈에서 무리를 하다가 공식적으로는 83년 전지훈련에서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습니다.

 

당초 진단은 전기리그에는 출전하기 힘들지만 후기부터 정상가동될 것이라는 기사가 나왔고 에이스를 잃어버린 전년도 챔피언 OB는 83년 전기리그 최하위에 머물게 됩니다.

 

정상가동될 것으로 믿었던 후기리그에서도 박철순은 여전히 팀에 힘이 되지 못한 채로 짧게 짧게 시험등판을 하다가 그 4번째 등판이 되는 9월 22일 MBC와의 잠실원정경기에서 사단이 납니다.

 

1회말 이해창에게 내야안타, 김재박에게 2루타를 허용한후 당시 4번타자로 활약하던 송영운의 강습타구에 치골부근을 그대로 맞으면서 뒤로 나자빠진 것입니다.

 

이후 박철순은 스스로 일어나 마운드에서 내려오긴 했지만 수개월간 치료받았던 허리디스크가 재발하면서 또다시 기나긴 투병생활에 들어가게 됩니다.

특히 이때는 당시로선 운동선수에게 치명적이라고 알려져 가급적 피하고 싶었던 허리수술을 끝내 미국에서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태였고 그는 수술과 재활을 거치면서 84년을 건너뛰고 85년 여름이 되어서야 다시 그라운드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의 커리어에 25승째를 올리는데 3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죠.

물론 그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라 또다시 디스크재발과 아킬레스건 파열로 수차례 부상과 재기를 반복하게 됩니다.

 

한편 83년 전기리그에서 구단과의 마찰로 장기휴가를 내고 떠났던 MBC의 백인천은 그 이후 끝내 MBC의 유니폼을 입지 못합니다.

감독계약은 남아있었지만 선수로서 1년씩 계약을 했기 때문에 전년도 맹활약을 했던 부분을 감안해 연봉의 대폭상승을 요구했고 구단은 감독겸 선수로서 한데 묶어서 계약된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계약내용이 유지된다는 주장이 엇갈리면서 불협화음이 난 것입니다.

 

감독없이 전기리그를 보낸 MBC는 후기리그가 되기 직전 김동엽 해태 초대감독을 영입한다는 발표를 합니다.

그리고 백인천이 복귀하면 선수로만 뛰게 된다는 것을 함께 발표하는데, 감독겸 선수가 감독직에서 물러나면서 선수로만 뛴다는 것은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3년을 계약했던 감독의 계약금 2/3을 변상한 후에 백인천은 후기리그부터 삼미로 이적해서 타격코치겸 선수로 뛰게 됩니다.

당시 삼미는 김진영감독의 폭행사건으로 사령탑 부재 상태로 후기를 맞아야 했기 때문에 중심타선은 물론 지휘자의 역할까지 해주기를 기대했을 겁니다.

또 일본야구의 선배로서 장명부의 푹주를 막을 수 있는 적임자이기도 했구요.

 

하지만 백인천은 삼미로 이적한지 약 두달후인 8월말.

부인의 고소로 인한 간통죄 혐의로 구속되는 사건을 일으킵니다.

 

김진영감독 구속후 감독대행을 맡겼던 이재환 코치를, 백인천코치와 사이가 좋지않다는 이유로 2군(사실상 그 시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2군...)으로 내리면서 팀의 지휘를 맡겼던 삼미는 후기리그 1위를 달리다가 팀이 다시 어수선해지면서 급전직하.

전기에 이어 후기마저 2위로 내려앉으면서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맙니다.

 

뒤에 부인과의 합의이혼으로 구속에서 풀려난 후, 간통을 일으킨 젊은 부인과 새출발을 했던 백인천은 84년시즌에 다시 그라운드에 모습을보이긴 했찌만 10경기에 출전한 후 결국 유니폼을 벗고 야구계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후 지도자로도 남아있지 못하고 백구상사라는 야구용품을 다루는 개인사업을 하던 백인천은 그로부터 6년뒤인 90년에 MBC를 인수한 LG의 초대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다시 야구계에 복귀하게 됩니다.

 

프로원년에 22연승과 4할타율, 아직까지도 깨지지않는 기록을 만들었떤 박철순과 백인천이 나란히 시련을 겪게 되었던 것. 이것 역시 83년의 주요한 사건중에 하나일 겁니다.

 

 

 


높새바람 10-05-31 11:26
답변 삭제  
백인천의 야구 인생도 뭔가 꼬이는 느낌이네요..
그래도 나름 오래도록 지도자 생활을 했으니 복받은 걸까요...?
최형석 10-05-31 11:30
답변 삭제  
그대로 묻히기에는 실력이 워낙 뛰어났던 인재였으니까요.
아직까지 우리나라 최고의 타격이론은 백인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워니!~ 10-06-01 18:04
답변 삭제  
4할 친 타자로써는 대단하지만...

자기방식만을 강요하고 따르지 않으면 내쳐버리는.. 지도자로써는...

인간적으로는 측은하기도 하지만..

차라리 롯데감독을 하지 않았었다면.. 좋았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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