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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환, 정영기, 차동열... 열리기 시작한 트레이드 시장
최형석 | 2010-05-24 08:32

초창기 우리 프로야구는 철저하게 지역연고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도 각지역을 분할하는 연고지는 존재하지만 현재는 드래프트를 통해 타지역의 선수를 입단시키고 있는데 반해 당시 프로팀들은 연고지내 선수들을 입단시킬 수 있는 권리가 무제한으로 있었기 때문에 한 팀의 선수들은 모두 그 지역 선수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예외적이라면 서울과 충청선수들이 혼합해 있던 OB, 그리고 연고팀의 지명에서 외면받은 선수들, 즉 유명무실한 당시 지명이었지만 그럼에도 팀에 보탬이 되지않는다고 판단된 극히 일부의 선수들만이 고향팀에서 뛰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원칙적으로 팀을 옮기는 것이 불가능했던 실업야구와 프로야구가 분명하게 다른 점은 트레이드라는 제도가 있다는 점입니다.

프로 각팀은 2년째를 맞아 서로간의 이해득실을 위해 이 트레이드라는 제도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 벌어진 첫번째 트레이드. 즉 트레이드 1호는 삼성의 서정환이었습니다.

 

70년대 대구지역의 강세로 각 실업팀에 모여있던 대구출신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였던 삼성은 한 포지션에 두세명의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중복될 정도로 선수들의 적체가 심했습니다.

서정환의 포지션인 내야에도 2루에 천보성, 배대웅, 3루에 김한근, 유격수에 오대석, 함학수 등이 몰려 있던데다가 2년째에 김근석과 정진호, 김동재라는 유망주들이 입단할 예정이라 아마시절 수준급 유격수였다고 해도 첫해 주전경쟁에서 밀렸던 서정환에게 기회가 오기는 사실상 어려웠던 실정입니다.

 

당시 정서상 트레이드라는 것이 팀에서 버림받았다는 분위기였고 고향팀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뛴다는 것이 쉽지않은 결정이었지만 서정환은 팀과 서영무감독에게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면서 내야수가 부족한 해태로 유니폼을 바꿔입게 됩니다.

 

서정환은 해태로 옮긴 이후 주전 유격수로 자리잡으면서 평균 2할 6~7푼대의 타율, 한번의 도루왕 타이틀(86년)까지 차지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데 성공합니다.

어차피 서정환의 케이스인 현금트레이드라는 것이 보낸 쪽의 전력에는 마이너스요소이기 때문에 해태이적후 서정환의 활약에 삼성으로선 큰 손해로 여겨질 수도 있었지만 위와 같은 경쟁구도에서 삼성에 남아있었어도 주전으로 도약하기는 거의 힘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에게도 그리 큰 손해라고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82년에서 83년으로 넘어가는 스토브리그에서 서정환의 1호 트레이드후 두건의 트레이드가 더 성사됩니다.

 

롯데 좌타 1루수였던 김일환이 김용철, 김정수와의 포지션 중첩으로 해태로 이적해서 좌타자가 전무했던 해태타선에 힘을 보태게 되고, 해태의 국가대표출신 외야수 김우근도 김준환, 김종모, 김일권 등 해태의 두터운 외야라인에서 밀려나면서 삼미로 팀을 옮기게 됩니다.

 

위의 사례들은 모두 한명의 선수가 현금트레이드된 것이라면 최초의 선수간 트레이드는 시즌중에 일어납니다.

 

전기리그가 끝난 시점에서 MBC의 유격수 정영기와 롯데의 포수 차동열의 맞교환이 발표됩니다.

 

프로원년 MBC 유격수였던 정영기는 대표팀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김재박에게, 롯데 차동열은 역시 대표팀 주전포수였던 심재원에게 주전자리를 내주면서, 충분한 기량은 검증되었지만 하나뿐인 주전자리에는 나올 수 없었던 잉여전력들이었습니다.

 

정영기는 롯데에서 노쇠한 주전유격수 권두조를 밀어내고 수년간 유격수로 활약했고 차동열도 MBC에서 완전한 주전이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김용운, 그리고 뒤에 역시 MBC로 이적한 심재원과 함께 마스크를 분담하면서 오랜기간 선수생활을 계속합니다.

 

새로운 팀에서 자기자리를 확보한 케이스로, 롯데와 MBC 양팀에게도 win-win 트레이드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서정환, 차동열, 정영기, 그리고 김일환과 김우근까지 83년에 기록된 트레이드는 모두 성공한 사례로 꼽히는데 단순히 이들이 옮긴 팀에서 자리가 있었기 때문에 성공했다기 보다는 트레이드라는 아픔을 이겨내고 타지에서 이를 악문 노력이 뒤따랐기 때문일 겁니다.

 

이들의 트레이드 사례이후 3년째부터 보다 많은 트레이드가 열리지만 특별히 짚고넘어갈만한 사례가 아니라면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높새바람 10-05-25 10:16
답변 삭제  
그래서 서정환 감독이 처음 감독 생활을 삼성에서 시작했다고 봐도 될까요? 꼭 그런 것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다른 팀에 비해서 거부감 같은 것은 훨씬 덜 했을 수 있겠네요.

한국도 좀 더 트레이드가 활성화되고, 기회를 많이 얻었으면 하지만..
8개 팀 뿐인 서바이벌 시장에서는 솔직히 쉽지는 않겠죠.
내가 못 쓰면, 남도 못 쓰는 거라는 비난이 팽배하니까요.
모든 트레이드는 결국 손해와 이익이 귀결되는데, 그걸 너무 과대포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ShineMore 10-05-27 20:10
답변 삭제  
70년대 경북지방 고교야구가 그렇게 대단했다던데,
정작 프로 출범되고나서는 삼성이 매년 1차지명 때문에 골머리 썩었던 거 보면 참 아이러니해요.
포수 진갑용 10-06-03 20:58
답변 삭제  
프로야구 원년의 삼성의 전력은 거의 양키스급이라고 해도 될 거 같습니다. 원년 코리안시리즈에서 전문가들 대부분이 삼성의 우승을 점쳤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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