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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충남 감독대행 - 특별한 의미의 \ 감독대행\
최형석 | 2010-05-23 10:25


- 1944년생

- 출신지 : 일본 교토

- 선수경력 : 난카이(67~72)
-  현역시절포지션 : 내야수

 

 

이충남의 최종직위는 감독이 아닌 감독대행이지만 이충남의 경우 절차상의 문제였을뿐 실제로 감독취임을 했다고 봐도 무방했고 특히 삼성구단에서 지금까지도 2대감독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설명을 하겠습니다.
 

일본이름은 야마모토 타다오(山本忠男).

고졸들과는 별도로 대학졸업생을 따로 묶어서 드래프트했던 67년에 2번지명을 받고 난카이호크스(지금의 소프트뱅크)에 입단해서 6년간 내야수로 활동했던 경력이 있습니다.

당초 난카이에서 코치로 승격했으나 한국에 올 무렵에는 오릭스의 전신인 한큐브레이브즈에서 수비 및 작전코치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죠.

 

원년에 OB 창단감독으로 거론된 적이 있었으나 역시 재일교포 = 반일본인 이라는 거부감으로 검토단계로만 그친 일도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에 내한해서 한국실업팀에서 활동했던 김영덕씨나 김성근씨와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었겠죠.

 

삼성이 프로원년우승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서영무감독까지는 어쩌지 못했지만 대신 서감독에게 경북고신화라는 선물을 안겨줬던 애제자 임신근 투수코치를 해임한후 전격적으로 일본에 있던 이충남코치를 거액에 영입하는데 성공합니다.

 

환율상의 문제가 있긴 했지만 서감독은 물론 당시 국내의 프로팀감독보다도 많았던 4천5백만원의 연봉, 그리고 코치가 아닌 조감독이라는 생소한 직책까지 만들면서 이충남에게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이죠.

 

일본에서의 작전코치시절 내놓는 작전마다 쪽집게처럼 들어맞는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 컴퓨터 일 정도로 경기를 읽는 눈이 뛰어나고, 두뇌회전이 빠른 인물이었지만 한팀의 지휘권을 둘로 나눠서 나타나게 될 팀의 성적은 뻔한 것이었습니다.

 

서감독은 이러한 구단에 섭섭함을 느낀데다가 과반수가 고교시절부터 키워준 제자들이었던 선수들이 서서히 이충남 조감독에 줄을 서는듯한 모습에 회의감을 느끼면서 개막 한달만에 지휘권을 내놓고 맙니다.

 

표면적으로는 건강을 이유로 사임한 서영무감독의 뒤를 이어 5월말 조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벗고 정식으로 감독대행 으로 취임합니다...

(감독대행이라는 자리에 정식으로 취임한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야구를 보는 눈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은 일본에서의 얘기였고, 컴퓨터용병술 또한 선수 개개인의 특성을 알아야 나오는 것이죠.

삼성은 전기리그 내내 하위권에서 맴돌다가 5위로 마쳤고, 종합성적에서는 4위에 그치고 맙니다.

후기리그에서는 삼미와 함께 공동 2위까지 올라갔다고는 하지만 우승팀이 가려진 상태에서 뒤늦게 분발한 성적이었을 뿐입니다.

 

전년도 우승권에 근접한 전력에 김시진, 장효조가 합류한 것을 감안하면 충격적인 성적이었죠.

 

당초 이충남 감독대행과 3년의 계약을 맺었던 삼성이었지만 뒤늦게 외국인이나 다름없던 인물, 한국말도 전혀 못하는 인물을 감독으로 영입한 것이 무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1년도 안되어 그를 해임하게 됩니다.

 

만약에 이충남감독이 어느정도 한국야구를 경험했고, 한국말도 가능했었다면 뒤에 김성근감독이 보여주었던 데이터야구를 한발 먼저 보여준 빼어난 지도자가 되지 않았을까 예측해 보기도 합니다.

그당시 한국야구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볼카운트 분석이나 투수들의 투구패턴 분석 등 선진야구를 한국에 도입한 것은 분명했고 특히 수비를 중시하면서 당시 삼성의 포수와 내야수들의 수비능력을 크게 향상시킨 것으로 평가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충남 감독의 노하우는 비록 당해에는 실패했지만 이듬해부터 삼성구단이 다시 우승전력을 갖추는데 일조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ShineMore 10-05-24 03:39
답변 삭제  
당대 최고 스타 최동원 선수 첫 해 연봉이 3000으로 알고 있는데 4500이면 그보다도 많군요.
당시야 선수에서 코치 되는 걸 \'승진\'이라고 표현할 정도의 분위기였다고 최형석님 블로그에서 본 것도 같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고액이 아닐까 싶네요.

감독대행으로 정식취임 ㅎㅎ
25~6년 이후인 지금 보니까 좀 황당하지만
아무래도 초창기에 시스템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은 불가피한 시행착오들이겠죠ㅎㅎ

이 다음 감독이 김영덕 감독 맞죠?
그때 삼성 성적이 엄청 좋은 걸 보면 확실히 이충남 감독의 노하우가 도움이 됬나 보군요.
그러고보니 같은 난카이 호크스 출신이군요. 이것도 시너지 효과를 만들지 않았나 추측만 해 봅니다 ㅎㅎ
최형석 10-05-24 08:38
답변 삭제  
이충남 대행의 연봉은 자리때문이 아니라 환율상의 문제였습니다. 영입을 위해 어느정도 맞춰줬어야 할 연봉이 엔화로 계산되다보니 원화로는 그렇게 많아진 것이죠.

그리고 끝내 감독이 아닌 감독대행이었던 이유는 역시 교포이긴 했지만 외국인, 특히 일본인이었다는 부담때문이죠.
훗날 롯데도 도이(도위창)코치를 감독으로 승격시키려고 했지만 이는 MBC의 미즈다니 코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권한은 거의 감독급이었지만 국내정서상 끝내 감독 타이틀을 달지 못했던 것이죠.
로이스터라는 최초의 외국인감독이 취임하기까지에는 수많은 구단의 시도가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듯 합니다.
높새바람 10-05-25 10:18
답변 삭제  
근황 같은 것을 알 수 없겠죠...
아쉬운 것이 이들 재일교포 선수들이 분명 한국 야구의 한 조각을 형성하는 선수들인데,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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