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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연의 교통사고 -- 홈런왕의 세대교체
최형석 | 2010-05-18 14:37

가능하면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지만 과거부터 적잖게 프로야구 선수들의 교통사고 뉴스가 나오곤 합니다.

때로는 해태 김대현이나 MBC의 김정수처럼 목숨을 앗아가는 큰 사고도 있었고 생명은 건졌어도 그 후유증에 야구계를 떠나야 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뒤에 정리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공교롭게도 이 프로야구선수들의 교통사고 뉴스는 위에 사망한 두 선수를 포함해서 해태와 MBC 선수들에게 유난히 자주 일어났습니다.

 

아마도 프로야구 최초의 교통사고 뉴스도 두 팀중 하나인 해태에서 일어났을 겁니다.

(크게 보도되지 않은 사고가 그 전에 있었을지도 모르죠.)

 

해태의 우승으로 전기리그가 끝난 다음날. 6월 28일에 해태의 4번타자 김봉연이 타고 있던 승용차가 남해고속도로에서 마주오던 트럭을 피해 가로수를 들이받는 사고가 일어납니다.

운전을 하던 친구의 부인이 뒷자리에 타고 있다가 그자리에서 사망했을 만큼 큰 사고였습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김봉연도 안면부위가 피투성이가 되어 병원으로 후송되었는데 불행중 다행인 것은 운동선수에게 치명적인 신경부위손상이나 골절상은 없었다는 점입니다.

 

머리와 얼굴부위에 300바늘을 꿰메는 치료를 받은 김봉연은 약 한달가까운 기간을 병원에 있어야 했는데 소속팀인 해태는 이미 전기리그 우승을 해놓았기 때문에 후기리그에 전력을 다할 필요가 없었고 가을에 벌어지는 한국시리즈 전에만 그가 합류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팀성적에서 무리를 할 필요가 없었지만 김봉연 본인으로선 개인타이틀에서 막대한 손해를 봐야 했습니다.

 

전년도, 즉 프로원년 홈런왕이었던 그는 83년 전기리그에도 홈런 16개를 치면서 홈런, 타점 2개부분 선두를 달리고 있었는데 한달반 가량 교통사고 치료를 받는 중에 전기리그 공동 홈런 1위였던 이만수가 멀찌감치 그를 추월하면서 타이틀을 가져가 버리게 됩니다.

 

8월 중순 다시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한 김봉연은 상처가난 얼굴부위를 가리기위해 콧수염을 달고 나와 남은 한달동안 홈런포를 재가동, 6개를 더 보태 22개로 시즌을 마치게 되지만 27개로 전년도의 두배이상을 치면서 급성장한 이만수를 끝내 다시 재역전시키지는 못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프로에 뛰어들어온 이만수 개인적으로는 처음 차지하는 성인무대 홈런왕으로 김봉연을 제치고 타점까지 2관왕에 오르면서 이 해에 MVP로까지 선정됩니다.

 

김봉연으로서는 마지막까지 절대로 포기하고 싶지않았던 홈런왕 타이틀.

그도 그럴것이 79년 실업무대에 대뷔해서 81년까지 실업야구 첫 3년연속 홈런왕. 프로가 출범한 82년에도 용병급 타자였던 백인천과의 거센 경쟁을 이겨내고 또다시 원년 홈런왕.

실질적으로 성인무대 4년연속 홈런왕이었던 데다가 사고만 아니었다면 5년연속 등극도 자신했던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72년 황금사자기 결승에서 부산고를 상대로 9회말 기적같은 역전승으로 모교를 우승시켰던, 군산상고가 지금까지 역전의 명수 라는 멋드러진 별명으로 불려지는 계기가 된 시절의 멤버였는데 당시 김봉연의 포지션은 투수였습니다.

 

73년 연세대 1학년생으로 춘계리그에서는 노히트노런까지 기록했고 추계리그에서는 국내최초로 3연타석홈런을 기록하면서 일거에 뉴스메이커가 되었던 김봉연.

투수생활은 곧 포기했지만 국내를 대표하는 1루수로 각종 홈런기록을 갖고 있었고 특히 프로출범이전 국내에서 6회밖에 나오지 않은 3연타석 홈런중 세번을 그가 기록했을만큼 홈런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습니다.

 

52년 1월생으로 54년생들이 주를 이루던 73학번 동기들보다 2~3살이 많았던 그는 이미 고교를 졸업할때 20대 초반의 나이였습니다.

(유급과 같은 편법이 아니라 과거 70년대 이전에는 이렇게 늦게 학업을 마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

 

대학재학중 군에 입대하면서 그나마도 동기들보다 늦게 실업야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실업야구 홈런왕 3연패를 하긴 했지만 당시로서 노장의 절대기준인 30세를 넘기면서 프로가 생기지 않았다면 곧 은퇴를 생각할 만큼 노장으로 분류됩니다.

대표팀 주전 1루수였던 그가 국가대표에서 탈락한 것도 노장이라는 이유로 야구협회가 배려를 한 것인데 프로출범 당시 학번으로 선배는 10여명이 있었다고 하지만 순수한 나이로만 계산하면 OB의 김우열, 윤동균 다음으로 나이가 많았습니다.

 

사고가 있긴 했지만 83년 처음으로 홈런왕 타이틀을 여섯살 어린 젊은 이만수에게 내준 김봉연은 그 이듬해에도 전성기에 접어든 이만수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아쉽지만 이제 국내 최고의 홈런타자 타이틀은 김봉연에서 이만수로 넘어가게 된 것이고, 그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교통사고였던 셈입니다.

 

김봉연은 86년 21개의 홈런으로 두번째 홈런왕에 오르긴 하지만 그 해에 이만수가 부상으로 절반의 경기에도 나오지 못했던 공백의 해였고 김봉연 자신도 많은 경기를 결장하고 기록했던 83년의 홈런수보다도 적은 기록으로 차지한 타이틀입니다.

 

콧수염의 김봉연은 MBC청룡과의 한국시리즈에서 3차전 결정적인 역전홈런 포함, 홈런왕을 놓친 분풀이를 하듯 맹타를 터뜨리면서 KS MVP에 오르게 됩니다.

시즌중 큰 사고를 겪었던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정신력이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높새바람 10-05-18 15:40
답변 삭제  
대단한 선수네요.. 그런데 원래 투수라는 사실도 놀랍네요.
홈런왕의 계보에 제일 먼저 이름을 올리는 선수니.. 그 정신력이 해태의 강함을 상징하는 그 무언가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ShineMore 10-05-22 21:48
답변 삭제  
나이가 많지 않은 저로서는 그냥 \'프로야구 초반 홈런타자\'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실업야구까지 생각하면 정말 당대 최고의 홈런왕이었군요.

수염 기른 사진을 본 것도 같은데 흉터를 가리기 위해서였군요..
이것도 새로운 사실입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최형석 10-05-23 10:26
답변 삭제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이 시리즈의 목적이 젊은 야구팬들에게 예전의 선수나 일화를 소개하는 것인데 너무 옛날얘기라 아직은 호응이 없네요.
포수 진갑용 10-06-03 20:45
답변 삭제  
아닙니다. 저처럼 소리 없이 잘 읽는 팬도 있으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않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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